4대 강, 잔치는 이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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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호 02면

두꺼운 낯가죽과 시커먼 뱃속.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하면 펄쩍 뛸 게다. 하지만 중국인 리쭝우(李宗吾)는 정반대다. 이런 사람이 진짜 영웅호걸이란다. 그가 100여 년 전에 쓴 후흑학(厚黑學)이 그렇다. 염치 따위와는 담을 쌓은 두꺼운(厚) 낯가죽, 세상을 속이는 시커먼(黑) 배짱이야말로 난세를 휘어잡는 도리라고 한다. 오래 전 알고 있던 이 말이 떠오른 건 4대 강 때문이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어제 열린 4대 강 새물결맞이 행사는 ‘아~대한민국’이었다. “하늘엔 조각 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는” 잔치였다. 무려 22조원이 들어간 대역사를 2년 만에 거의 끝냈으니 그럴 만도 했을 거다. 홍수 피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가라는 논쟁에도 많이 시달렸던 터다. 그런 참에 올해 수해가 예년보다 적었으니 상당히 의기양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요란하게 잔치를 한 것이라면 잘못됐다. 엄밀히 말하자면 종합적인 평가가 지금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몇 년은 지나야 수해 예방과 용수 확보, 수질 개선 등에 미친 영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좀 더 시간이 흘러야 한다.

하지만 4대 강에 대해선 그것과는 별개로 따져봐야 할 게 있다. 대규모 국책사업이라면 당연히 받아야 할 경제적 타당성 조사를 회피했기 때문이다. 사업비 500억원을 넘는 국책사업이나 정부 돈이 300억원 이상 들어가는 사업이면 무조건 받아야 하는 조사다. 그게 법이 정한 원칙이다. 하지만 이 정부는 아예 법을 고쳤다. 조사 면제 요건을 확대하고 사업을 잘게 쪼개 조사를 받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2009년 3월의 일이다. 불법은 아니지만 편법인 게 분명하다. 무분별한 국책 사업의 남발을 막아 국고 낭비를 차단하겠다는 법의 취지도 무색해졌다. 이때부터 나는 4대 강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됐다. <2009년 5월 3일자 ‘경제세상’>

4대 강의 효과는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평가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법을 고치면서까지 밀어붙인 행태는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이후 4대 강이 꼬이기 시작한 건 이 때문이라고 본다. 이만한 대역사라면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 일단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어서다. 공사의 영향을 세밀하게 점검하면서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속도전으로 나갔다. 법으로 정해진 환경영향 평가마저 약식으로 넘어갔다. 공사비도 한없이 늘었다. 지류·지천 공사에 유지비까지 합치면 물경 50조원이 넘을 것이다. 이 모든 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이다.

MB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성과지상주의라는 거다. 강자는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거나, 수단·방법보다 결과에만 매달린다는 비판도 있다. 전혀 근거 없다고 하기 어렵다. 이런 현상은 다른 분야에서도 보여진다. 기업의 팔 비틀기가 또 다른 사례다. 무조건 물건 값을 내리고 수수료를 인하하라고 요구한다. 왜 내려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나 논리적 근거를 거의 제시하지 않는다. 이익을 많이 내고 있으니까, 서민이 반발하니까 하는 식이다. 그런 식으로 하면 시간이 지나면 결국 도로아미타불이 된다고 설명해봐야 건성으로 듣는다. 제도를 바꾸고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임기 중에만 어떻게든 낮추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걸핏하면 공권력이 전면에 나서는데 그건 결국 법과 준칙 대신 강제와 재량에 의존한다는 뜻이다. 서민을 강조하던 노무현 정부 때도 이런 현상은 별로 없었다.

지난 3월 말 정부는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백지화했다. 비용보다 편익이 커야(비용/편익 비율이 1을 넘어야) 경제성이 있는데 신공항은 0.7밖에 안 된다고 했다. 맞는 판단이었지만 정부가 할 얘기는 아니었다. 4대 강은 그런 조사조차 받지 않았으니까.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불과 나흘 후의 국토해양부 발표다. 향후 10년간 건설할 제2차 국가철도망 계획을 발표하면서 “0.7 이상인 사업을 우선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니 정부를 못 믿겠다는 얘기가 나온다. 내곡동 사저를 둘러싼 각종 의혹도 마찬가지다. 혹시 후흑이 영웅호걸이란 얘길 믿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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