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길거리의 진짜 매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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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호 30면

한국 생활 9년 만에 처음으로 손님을 맞았다. 남동생 마크가 보름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것이다. 한국에서 손님맞이를 해본 적이 없으니, 뭘 해야 좋을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서른 살인 마크에게 아시아 여행은 처음이다. 그는 뉴잉글랜드에서 돼지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니 삼겹살집은 무조건 동생을 데리고 가야 할 곳이다. 하지만 그 외엔 동생과 뭘 하면 좋을까, 고민이 시작됐다.

오랫동안 한국 생활을 해온 누나로서, 동생의 여행을 책임지겠다는 의무감과 한국의 모든 걸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세심하게 일정을 짰다. 주로 한국 문화와 관련한 일정이었다. 내가 만든 것이지만, 한국관광공사에 제공해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사용해도 된다고 자부할 만큼 공을 들였다.

하루는 서울시티버스를 타고 시내 관광을 했다. 이튿날엔 전쟁기념관에서 한국전쟁의 역사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나흘째엔 휴전선 비무장지대(DMZ)를 찾았다. 하지만 정작 동생이 흥미를 느낀 것은 그게 아니었다. 정처 없이 서울의 거리를 돌아다니고 한국만의 풍경을 보는 것이었다.

우리는 인사동 관광에 나섰다. 모두가 필수 코스로 꼽는 인사동 말이다. 하지만 마크는 기념품 몇 가지를 쇼핑하고는 인사동길을 빠르게 지나쳤다. 그러고는 진짜 한국 탐험에 나섰다. 물론 인사동은 매력적인 동네다. 하지만 동생은 관광객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진짜 한국의 동네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동생은 한국을 느껴보라며 만들어 놓은 관광지보다 복잡한 명동 거리에서 폐지를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가던 노인의 모습이 훨씬 인상적이라고 했다. 잘 만들어 놓은 한옥마을보다는 빌딩 숲 가운데 나지막이 자리한 한옥을 우연히 발견하는 재미가 훨씬 크다고 했다.

마크에게는 서울 도심 직장인들의 식사 풍경도 흥미로웠나 보다. 가장 붐비는 낮 12시, 직장인들이 좁은 감자탕집의 방바닥에 앉아 바쁘게 식사하는 장면이야말로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서울의 생생한 모습이라고 했다. 서울에 익숙해진 내게는 흔한 장면이지만 그에겐 인상적이었나 보다.

덕수궁에서도 그랬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궁궐보다, 돌담 앞에 서서 한 손만으로 나무에 글자를 새기는 조각가였다. 매일 저녁 나는 그의 카메라에 담긴 서울 풍경을 들여다 봤다. 유명 관광지에서 찍은 증명사진 같은 것은 한 장도 없었다. 우리가 늘 보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일상의 장면이 한 장 한 장 담겨 있었다.

심지어 운동을 즐기지 않던 마크가 하이킹에도 재미를 붙였다. 전라남도의 작은 민박집, 뜨끈한 온돌에서 잠이 깬 어느 날에 하루 종일 하이킹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아름다운 산과 그 산을 오르는 재미에도 흠뻑 빠졌다.

무엇보다 동생이 좋아했던 것은 바로 한국 음식이다. 놀랍게도 처음 맛보는 순간부터 김치가 좋았단다. 길거리 음식에도 매료됐다. 떡볶이를 파는 노점에 들어가 내 도움 없이도 돈을 내고 먹는가 하면, 호떡이 너무 맛있다며 틈만 나면 사먹었다. 우리 모두 말렸지만 용감하게도 번데기에 도전하기도 했다. 드디어 여행 막바지인 열두 번째 날, 우리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산 낙지를 먹었다. 그는 한국에서 먹은 다양한 음식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했다.

내일이면 동생은 한국을 떠난다. 다음 번엔 내가 뉴잉글랜드에 사는 동생의 집에 가기로 했다. 우리는 그가 직접 만든 베이컨을 구워 먹을 것이다. 동생은 서울의 삼겹살집에서 봤던 것처럼, 자신의 집에 있는 피크닉 테이블 한가운데에 동그란 구멍을 뚫겠다고 했다. 삼겹살처럼 베이컨을 구워 주겠단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최고의 한국 문화가 아닐까.



미셸 판스워스 미국 뉴햄프셔주 출신. 미 클라크대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아트를 전공했다. 세종대에서 MBA를 마치고 9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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