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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자유민주주의’ 논란 집필자에게 떠넘기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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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자유민주주의 논란이 갈수록 혼란스럽다. 지난 8월 교육과학기술부가 새 역사교과서 교육과정을 발표한 이래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냐 ‘민주주의’냐를 놓고 교육당국과 일부 좌파 학자들 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국사편찬위원회는 지난 17일 새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 공청회에서 자유민주주의 용어 사용 방침을 재확인했다. 그런데 이틀 만인 19일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에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과 함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도 사용키로 했다고 밝혔다. 항목에 따라서는 ‘자유민주주의’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는 새 역사 교육과정에 자유민주주의란 용어가 들어가는 것에 반대하며 민주주의란 예전 표현을 그대로 쓰자고 주장하는 일부 좌파 학자들을 의식한 결과다. 헌법 전문에 나오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넣으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문제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공통된 정의가 없고 이해가 서로 다른 것만큼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보는 틀과 입장도 다양해 또 다른 혼란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어린 학생을 대상으로 한 역사교과서는 학술 연구 차원이 아니라 교육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역사교과서의 현대사 부분을 북한 인민민주주의를 배제하는 개념의 자유민주주의로 표기하는 게 당연하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자유민주주의’라고 보는 이태진 위원장과 달리 이에 동의하지 않는 세력도 많은 만큼 집필 기준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병용(竝用)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2013년부터 사용할 중학교 새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은 26일 고시될 예정이다. 교과부와 역사편찬위는 혼란 없는 명확한 집필 기준을 마련하는 데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집필 기준을 헷갈리게 하는 건 교과서 집필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처사일 뿐이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공동체의 역사를 정치적 이념의 틀 속에 넣어 왜곡하는 일이 있어선 바람직한 역사교육을 기대할 수 없다. 새 역사교과서를 제대로 만드는 일이 역사교육 강화를 위한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