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돌발위기 없으면 내년엔 추경없다” 공표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2면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정부가 매우 의욕적인 2012년 예산안을 발표했다. 각종 재정 수요가 폭증하는 내년 선거 상황에서도 나라 씀씀이는 긴축적으로 유지해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 또 복지지출 확대 요구를 일자리 창출을 통해 대응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철학도 반영돼 있다.

 이번 예산안을 보면 2012년에 총수입이 9.5%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총지출은 총수입보다 4.0%포인트나 낮은 5.5%로 설정했다. 내년 예산 총량에 대해 비판적 시각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먼저 내년 경제상황이 올해보다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므로 확대재정 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현재는 단기간의 경기대응용으로 재정을 사용하기보다 재정 건전성 제고를 통해 거시경제의 안전성을 추구할 시기로 판단된다. 순간적 경제성장률 제고보다 유럽발 재정위기, 미국 재정악화, 그리고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금융위기 등에 대비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우려되는 점은 내년 선거를 고려할 때 추가경정예산안 요구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내년에 금융위기와 같은 돌발적 위기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추경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공표할 필요가 있다.

 내년 경제성장률을 4.5%라는 비현실적 수치로 높게 설정해 정부의 수입안이 과대 계상돼 있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가 세입예산 근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엄밀한 판단은 어렵지만 경제성장률과 세입 간의 일반적 관계로 판단할 때 세입은 다소 높게 잡은 것으로 판단된다.

 균형재정 시기를 1년 앞당기겠다는 부분은 재정 건전성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판단되지만 이 같은 계획이 실제로 지켜진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 당장 2013년은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는 시기이고 새 정부의 성격에 따라, 그리고 당시 경제상황에 따라 이 목표가 달성되지 않을 가능성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구속력이 부족한 중기 재정계획의 본질적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부문별로 보면 전체 증가하는 재원은 사회간접자본 감소분을 합해 17조원인데 이 중에서 5조6000억원이 보건·복지·노동 분야에, 3조9000억원이 교육에 투입된다. 이 두 분야만 합쳐도 전체 증가액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보건·복지·노동 분야 증가액 중 공적연금의 자연 증가액과 주택 관련 지출을 제외한 복지지출 증가액은 1조4000억원에 불과하다. 정치권의 복지예산 증대 요구에 대응하는 한편 한번 늘어난 복지예산은 줄어들기 어렵다는 점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정부의 고민이 보이는 듯하다. 일단 일자리를 중심으로 일, 성장, 복지의 선순환을 정립하겠다는 기본 방향은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의 효과성을 극대화해야 하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실효성도 높여야 한다. 칸막이식 복지제도의 개혁과 복지전달체계의 효율화 등을 통해 복지의 체감도를 높이는 노력도 중요하다. 또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사업 중에서 효과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축소함으로써 복지재원을 확충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이번 예산안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정부의 대차대조표를 개선해 재정 건전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정 건전성의 양적 개선은 재정지출의 효율성과 효과성 제고라는 질적 개선이 병행될 때 의미가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