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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사유상 만난 뒤 다 접었다, 여인상에만 매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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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나이를 먹어서 일찍 일어나요. 새벽 5시 전에 일어나 그리고, 깎고. 하나도 안 힘들어요. 재미로 하니까.” 팔순에 접어든 조각가 최종태씨가 활짝 웃었다. 뒤에 있는 소녀상과 닮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일 오전, 서울 연남동 이층집. 반지하 작업실로 가을 햇살이 쏟아졌다. 수십 개 여인상이 우리 나이 팔순을 맞은 조각가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햇빛이 너무 부신 거여. 작년에도 똑같았을 텐데 그땐 몰랐어요. 예전 찬송가에 ‘날빛보다 더 밝은 천당’이란 가사가 있었어. 햇빛이 그렇게 그냥 하얗게 찬란해요.”

 조각가 최종태(79)씨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단어 하나 하나를 고르듯 천천히 말했다. 노(老) 조각가는 천당 얘기를 하며 날빛보다 밝은 얼굴이 됐다.

 그는 열세 살에 도둑같이 온 해방을 맞았다. 전쟁통인 1952년 대전사범학교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58년 서울대 미대 조소과에 들어갔다. 거기서 김종영(1915∼82), 장욱진(1917∼90) 선생을 만났다. “혼자 해 보려니 안 되겠더라고. ‘꼭 뭘 해야겠다’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다 운명처럼. 좋은 스승을 만난 것도 그렇고. 예술도 내가 하고자 해서 하는 게 아니고, 뭔가 저 위에서 이끌려서 하게 되는 거지. 그게 최고 경지라고 생각해요.”

길상사 관음상

 젊은 시절, 세계 미술계는 추상 붐이었다. 한국에서도 추상조각이 유행했다. 그는 그 흐름과 거리를 뒀다. “식민지인 줄도 몰랐는데 해방이 왔고, 전쟁을 겪었어요. ‘나는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계속해서 나를 지배했어요.” 65년 당시 국립박물관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을 만났다. 여인상에 본격 매진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래서였을까. 웃는 듯, 슬픈 듯, 생각하는 듯 오묘한 표정의 조각상들은.

 “그전엔 해 놓으면 자꾸 슬픈 얼굴이 되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내가 그렇게 좋게 못 살아왔잖아. 어려운 시대이다 보니. 줄곧 그 그늘을 벗기는 일을 한 거야. 벗긴다고 벗겨지는 게 아냐, 내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그래서 어려운 거지. 이제는 슬픈 얼굴이 거의 없어졌어. 1㎜오차로 더러 웃게도 하고 안 웃게도 해요. 그게 40년이 걸렸어.”

 요즘 그의 조각상들은 색깔도 입는다. 그것도 원색으로. 처음엔 나무의 흠을 감추려 시도했던 것을 이젠 아주 본격적으로 채색 조각을 내놓는다. “점점 밝아지는 거죠. 민화나 단청 속에 조선의 정서가 솔직하게 표현돼 있다고 봐요.”

 모자상을 비롯해 그는 평생 여인상만 만들었다. 예수상, 그리고 딱 한 번 그 아버지 요셉상을 만든 것만 빼고.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요.

 “어머니는 아주, 그냥, 보통, 좋은, 아무런 특징 없는 분이지. 내 어머니를 모델로 만든 건 아니에요. 내 조각엔 모델이 없어요. 그냥 한국 사람의 얼굴인 거요.”

 학창 시절엔 불경을 여러 달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고향에 내려가 세례를 받았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인천 소래의 사르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피정의 집, 서울 대치2동 성당 등 여러 곳에 성모상을 만들었다. 99년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 만든 관음상은 종교간 화합의 상징으로, 지금도 이곳을 찾는 많은 이들을 위로한다. 그의 조각상을 보면 우리는 문득 기도하듯 자세를 가다듬게 된다. 그가 추구하는 건 예술일까, 종교일까. “다 한 덩어리입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다 합쳐졌어요.”

 -은사이신 김종영, 장욱진 선생도, 생전에 교우하셨던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도 가셨습니다.

 “이제 혼자 남은 거지요.”

 -죽음이란 뭘까요.

 “그건 모르죠. 누구든지 가야 하는 하나의 과정인 것 같아요. 끝이 아니라 과정. 김 추기경과 법정 스님이 가는 걸 보니 저분들은 과정을 살더란 거여. 끝이다 하는 생각이 없어. 죽음을 맞이하고, 그로써 또 살더란 거죠.”

글=권근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종태 ‘구원(久遠)의 모상(母像)’전=21일부터 다음 달 13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02-720-1020.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現] 김종영미술관 관장

19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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