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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이 부른 두 공포 … 그리스 ‘분노의 거리’ 중국 ‘식어가는 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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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7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긴축정책 반대 시위에 참가한 소방대원들. 굳은 표정으로 규탄 연설을 듣고 있다. 그리스 노동자들은 20일로 예정된 새 긴축 재정안 표결을 앞두고 파업에 돌입했다. [아테네 로이터=뉴시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

그리스의 상황이 또 불확실해졌다. 프랑스의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도 제기됐다. 잠시 주춤하던 유럽 위기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계경제의 ‘신형 엔진’ 중국도 심상찮다. 성장세가 꺾이는 조짐이 뚜렷하다. 유럽·중국발 암운에 글로벌 경제의 시계(視界)도 다시 흐려지고 있다.

또다시 그리스다. 글로벌 시장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총파업과 의회 3차 긴축 표결이 오늘(19일) 이후 이틀 사이에 예정돼 있다. ‘반(反)월가 시위’와 맞물리면 파업의 위력이 거세지고 긴축안도 부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시장이 그리스 사태 때문에 경련하기는 재정위기가 불거진 2009년 11월 이후 얼추 네 번째다.

 총파업과 긴축 표결은 그리스와 유로존 운명을 엮어내는 씨실과 날실이다. 총파업은 그리스 대중의 힘을 상징한다. 긴축안은 사실상 채권 금융회사들의 영향력을 의미한다. 서로 반대로 움직이는 두 가닥의 실은 앞으로 이틀 동안 아테네 등에서 얽히고설키면서 역사의 한 장을 만들어내게 된다. 어떻게 엮이느냐에 따라 유로존의 미래가 결정될 수 있다.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59) 총리는‘운명의 순간’이라고 말했다.

 파업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18일 국세청을 포함해 그리스 재무부 조직 절반이 작동 중단될 정도다. 재무부는 긴축안을 만들고 집행하는 정부 조직이다. 로이터 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재무부 직원들도 손 놓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그리스 국민들은 긴축안이 의회에 상정될 때마다 격렬하게 저항했다. 신타그마(헌법) 광장에선 재정위기가 표면화한 이후 거의 매일 시위가 벌어졌다. 이 광장은 근대 그리스 민주주의 성소(聖所)다.

 그런데 이번 총파업은 글로벌 시장을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이른바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글로벌화하고 있는 와중이어서다. 반월가 시위는 금융세력, 달리 말해 채권 금융회사들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뉴욕타임스(NYT)는 “반월가 시위가 채권 금융회사들의 긴축 압박을 받고 있는 이탈리아 등 남유럽에 상륙해선 더 격렬해지고 있다”며 “이런 흐름이 그리스 아테네에서 총파업과 결합해 상승작용을 일으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그리스 앙대 노총은 이틀 동안 모든 동력을 가동할 예정이다. 특히 공공 부문 파업에 집중한다. 파업 둘째 날인 20일로 예정된 의회 표결에서 긴축안 통과를 막기 위해서다.

 이번 긴축안은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포괄적인 대책(그랜드 플랜)’과 맞물려 있다. 그리스의 추가 긴축을 전제로 채권자의 고통분담(원리금 탕감)이 추진된다. 그리스 의회에서 긴축안이 부결되면 그랜드 플랜 자체가 흔들린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17일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는 긴축안이 왜 필요한지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운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며 “굳건한 의지와 단결, 평정, 냉철함을 보여주는 게 조국과 국민에 대한 의무”라고 말했다. 그는 애국심을 최대한 자극했다.

 WSJ는 “글로벌 시장은 그리스 의회의 의석 분포에 비춰 통과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18일 전했다. 파판드레우가 이끄는 집권 사회당은 전체 300석 가운데 154석을 차지하고 있다. 파판드레우는 군소 야당의 지원에 힘입어 지금까지 긴축안을 어렵지 않게 통과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표결이 거듭될수록 지지 의원 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긴축안이 통과되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유로존 리더들이 한숨 돌리겠지만 지지와 반대의 표차가 크지 않으면 파판드레우의 정치 앞날이 밝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긴축안이 마지막이 아닐 가능성이 커서다. 4차 또는 5차, 6차 긴축안이 부결될 수도 있다.

 현재 제1 야당인 신민주주의당은 파판드레우 긴축안에 반대하며 조기 총선을 요구하고 있다. 일리아스 니코라코폴로스 아테네대 교수(정치학)는 미 경제전문 다우존스 통신과 인터뷰에서 “이번 표결에서든 아니면 다음 표결에서든 긴축안이 부결되면 파판드레우 총리는 실각할 수밖에 없다”며 “이후 그리스에선 유로존 탈퇴가 공론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로화의 운명이 유럽중앙은행(ECB) 본부나 독일 총리의 공관, 프랑스 엘리제궁, 유럽연합(EU) 대회의실이 아니라 아테네 광장에서 결정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강남규 기자

3분기 9.1%, 예상보다 낮아
중국 정부 노력에도 내수 부진
4분기엔 7.5% 급락 전망도
긴축정책 기조 수정할지 관심

중국 경제가 심상찮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올 3분기에 경제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1% 성장했다고 18일 발표했다. 이는 올 1분기(9.7%)와 2분기(9.5%)는 물론 블룸버그 통신과 다우존스 등의 예상치(9.3%)에도 못 미친다.

 중국의 수출과 시설투자는 증가 추세를 이어갔다. 내수가 문제였다. 중국 정부가 온갖 노력을 기울여온 내수 증가가 기대에 못 미쳤다. 글로벌 경제가 심상찮은 와중에 9.1%는 나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생산요소(노동과 자본) 증가율이 8%대인 점에 비춰 9% 남짓 성장률은 겨우 본전을 챙긴 셈이다.

 중국 당국은 낙관적 입장이다. 중국 통계국 대변인은 “거시경제정책 조정에 따라 경제가 총체적으로 양호하고 기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얼츠탄디(二次探底·더블딥)’ 가능성도 부인했다.

 외부 시각은 다르다. 로이터 통신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중국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서방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던 2008년 하반기 이후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이유다. 2008년 중국 경제는 3분기 9.7%에서 4분기 7.6%로, 이듬해 1분기에는 6.6%로 곤두박질했다.

 성장률 통계의 신뢰도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를 비롯해 곳곳에서 중소기업들이 긴축 정책으로 돈줄이 말라 줄줄이 쓰러지고 있는데 9% 성장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마켓워치는 “최근 상하이(上海) 주가가 통계 진실성이 의심되자 급락했다”며 “경제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창조적 숫자 게임(Creative Numbers Game·분식)’을 통해 9% 성장률을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고 의심한다”고 전했다.

 글로벌 시장에선 4분기에 7.5%로 급락할 것이란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집값 등 자산가격 하락 가능성도 제기됐다. 중국사회과학원의 초청으로 베이징을 방문 중인 정덕구(전 산자부 장관) 니어재단 이사장은 “중국 경제가 내년에 7%까지 떨어지면 한국 경제성장률은 3% 초반까지 하락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 정부가 거시경제 정책을 수정할지도 관심거리다. 중국 정부는 2008년 위기 땐 4조 위안(약 720조원)의 자금을 풀었다. 그 결과 경기는 빠르게 회복됐지만 인플레라는 부작용이 따라왔다. 2010년 하반기부터 급격히 돈줄을 죄면서 최근에는 ‘돈맥경화’로 쓰러지는 기업이 늘었다. 당장 긴축 기조를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단 중국 정부는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에 숨통을 터주고 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이 광범위하게 돈줄을 풀지는 불투명하다. 중국국가행정학원 왕샤오광(王小廣) 연구원은 “GDP 8% 선이 무너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돈을 푸는 쪽으로 거시경제정책 기조를 바꿀 가능성은 없다”고 일축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서울=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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