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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가치 7000조, 단천엔 한국 1만8000년 쓸 마그네사이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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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호 14면

2007년 7월 북한 단천의 대흥 광산을 찾은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인사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랐다. “산 전체가 하얀 마그네사이트였다. 그 뒤에 있는 산도 역시 하얀색이었다. 북한이 인근의 한 산을 왜 ‘백금산(白金山)’이라고 부르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얀 금이나 다름없는 마그네사이트 산이었다.”(최경수 북한자원연구소장) 갱도를 뚫고 내려갈 필요도 없이 포클레인으로 긁기만 하면 되는 마그네사이트 노천광을 접한 것이다.

북한 광물자원

한국광물자원공사에 따르면 남한이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마그네사이트가 단천 일대에 36억t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남한의 수입량이 19만8600t인데 이 정도라면 단천의 광산만 캐도 1만8000년간의 수입 분량을 대체한다.

지난해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북한 주요 통계지표’에 따르면 북한의 주요 광물 매장량은 2008년 기준으로 금 2000t(61조3274억원), 철 5000억t(304조5300억원), 마그네사이트 60억t(2679조7320억원), 무연탄 45억t(519조4350억원), 구리 290만t(9조2791억원) 등 남한을 압도한다. 남한 내 금 매장량은 42.7t에 불과하다. 산업의 근간인 철의 매장량에서도 남한은 37억3000만t으로, 북한의 철광석 매장량은 남한의 134배에 달한다. 한국광물공사는 2008년 달러 가치를 기준으로 북한 내 주요 광물의 잠재가치를 6983조5936억원으로 추정했다. 남한 광물 잠재가치(289조1349억원)의 24배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북한의 광물자원은 북한이 자신들의 상품 가치로 내세울 수 있는 매력 중 하나”라며 “남북 간 경제 교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남북간의 경제 구조로 볼 때 남의 자본과 기술, 북의 자원과 노동력이 결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가 북한의 광물로, 남북 간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중요한 축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북한의 광물자원은 장기적으론 통일 과정에서 들어가는 막대한 통일 비용을 경감시킬 수 있는 숨겨진 ‘보험’이기도 하다. 북한의 광물자원은 남북이 함께 ‘윈-윈’할 수 있는 ‘블루오션’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북·중 국경지대에 접한 함경북도 무산 철광. 일본 미쓰비시광업이 1930년대 개발을 시작했던 이 광산은 경제성이 있는 광석만 30억t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시아 최대의 노천 철광이다. 이 광산에서 채광 후 물에 흘려 보내는 미광(尾鑛·광물 찌꺼기)이 쌓인 두만강에서까지 ‘채굴’이 이뤄질 정도다. 철광석 가격이 급등하며 채산성이 맞춰진 데다 기술도 개발된 때문이다. 미광을 자석을 갖춘 기계에 넣은 뒤 돌려 철 성분을 분리해 낼 수 있게 돼 두만강 강바닥까지 준설하고 있는 것이다. 올 초 무산 건너편의 중국 난핑(南平)을 찾았던 한 대북 전문가는 “중국 측 트럭이 북한으로 건너와 포클레인으로 파낸 강바닥의 미광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중·일 간 ‘희토류 전쟁’ 이후 북한의 희토류도 주목받는다. 최 소장은 “평북의 철산 광산 한 곳에만 희토류가 약 25만t이 매장돼 있고, 평북 정주와 강원도 원산 지역에도 희토류가 매장된 것으로 파악된다”며 “북한 전역에 걸쳐 정밀 탐사를 하면 매장량이 더 늘 수 있다”고 말했다. 단순 비교하면 지난해 3200t을 수입한 남한이 78년간 수입할 수 있는 분량이다. 철산 광산은 일제시대 때부터 모나자이트를 채굴하던 곳이다. 모나자이트 원광석을 제련하면 희토류인 세륨과 함께 토륨·우라늄 등도 나온다. 북한은 철산 광산에서 생산된 희토류를 가공해 매년 350t가량을 일본 등지로 수출해 왔으나 최근 일본의 대북 경제 제재로 인해 판로를 중국으로 바꿨다.

그러나 블루오션엔 가시가 있다. 단천을 찾았던 남측 인사들은 주변 시설을 돌아보고 또 한번 깜짝 놀랐다. 광산 가동에서 전력은 필수다. 단천 광산에 공급되는 전기는 인근 허천강 수력발전소에서 온다. 당시 방북단의 한 인사는 “수력발전소 터빈은 1930년대 일본 미쓰비시에서 만든 것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었다”며 “발전소 내 동력 모터도 60년대 함흥본금기계에서 제작한 낡은 것이었다”고 귀띔했다. 방북단이 광산 인근의 변전소를 둘러보니 전력 과부하를 막기 위한 차단장치(두꺼비집) 대신 굵은 구리선이 걸려 있었다. 이 인사는 “구리선을 보고 기겁을 했다. 그간 전력 설비의 현대화는 물론 유지·보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철도도 문제다. 광산에서 채굴한 원광을 제련해 남쪽 단천항으로 옮겨야 하는데 철도가 낙후돼 수송의 정시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도로 역시 문제다. 다른 인사는 “남측에서 20여 명이 올라온다고 해서 평양에서 트럭으로 식자재를 보냈는데 단천까지 27시간이 걸렸다고 (북측으로부터) 들었다”며 “북한에서 도로 수송은 아예 생각을 말아야 한다”고 했다. 광물의 잠재가치는 엄청나지만 이를 개발하기 위해 전력·철도·항만 등을 개·보수하다 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북한의 광물 개발에는 ‘북한 리스크’라는 경제 외적 요인도 작용한다. 한국광물자원공사는 2003년 북한과의 합작사업으로 황해도 정촌 광산에 60억원을 투자했다. 향후 15년간 광산에서 나오는 흑연을 현물로 받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2006년 준공식 후 남한이 받은 흑연은 2007년과 2010년 세 차례에 걸쳐 850t에 불과했다. 24시간 공급된다던 전력이 하루 8시간밖에 들어오지 않아 광산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은 때문이었다. 그나마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엔 아예 북한은 흑연을 주지 않고 있다. 광물자원 개발은 초기에 대규모의 자본이 들어가는 반면 투자비 회수엔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남북관계 경색을 이유로 북한이 약속했던 광물 제공을 거부할 경우 난감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전문가들은 북한 광물자원 개발엔 철저한 준비와 남북 간의 신뢰 구축이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의 광물은 남한으로선 무시할 수 없는 보고이지만, 남북이 정경(政經) 분리로 추진해야 사업의 안정성이 확보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광산 가동에 필수적인 전력 공급을 남에서 제공하거나 중국·러시아 전력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해서 사업 중단 때 전력 공급도 중단되는 등의 ‘안전핀’도 사전에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동북아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 광물은 매장량만 가지고 판단해선 안 되며 주변 인프라까지 종합적으로 감안해야 한다”며 “잠재가치와 채산성은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우선 투자 지역을 개별 광산이 아닌 경제성이 높은 광산 지구 패키지로 묶어 SOC 투자의 효과를 최대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화여대 조동호(북한경제학) 교수는 “경제성과 정경 분리의 원칙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 북한 광물 개발”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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