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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통령 사저, 원점에서 재검토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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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통령 사저(私邸)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의 대응은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임기응변에 얼렁뚱땅 끼워 맞추기 수준에 불과하다.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처음엔 대통령 사저 지을 땅을 아들 시형씨 이름으로 산 부분이 문제로 집중부각됐다. 남의 이름을 빌려 부동산을 샀기 때문에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혐의가 제기됐다. 아들이 땅을 살 돈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증여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러자 청와대는 부랴부랴 해명 회견을 했다. 차명(借名)에 대해서는 “대통령이나 영부인 이름으로 살 경우 땅값을 높이 부르기 때문”이라며 “대통령이 나중에 아들로부터 땅을 다시 사들이려 했다”고 해명했다. 증여 의혹에 대해선 “시형씨가 어머니 땅을 담보로 6억원을 은행에서 대출받고, 나머지 5억원은 친인척으로부터 빌렸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11일 “대통령이 사저 땅을 매입해 명의를 바꾸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대응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부동산 명의를 뒤늦게 바꾼 것 말고는 달라진 것이 없다. 부동산 차명거래나 증여에 대한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다. 청와대의 설명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굳이 청와대나 대통령 이름을 밝히지 않고도 땅을 충분히 살 수 있다. 실제로 내곡동 땅 매매 과정에서 주민들은 처음에 기획부동산업자가 사려는 줄 알았다고 한다. 지역주민들이 대통령 사저 지을 땅이란 사실을 눈치 챈 것은 김윤옥 여사로 보이는 인물이 경호 인력을 거느리고 현지를 둘러보는 광경을 목격한 이후라고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에 의혹이 풀릴 까닭이 없다. 더 이상 납득할 수 있는 설명도, 사과도 없다. 문제가 있다는 비판 여론이 일자 마지못해 최소한의 조치만 취한 모양새다.

 며칠 새 문제는 더 심각한 국면으로 들어섰다. 내곡동 땅을 사는 과정에서 정부 예산이 대통령 일가로 전용되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덩어리로 된 땅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경호용 부지는 비싼 값을 쳐주고, 대신 시형씨가 산 사저용 부지는 헐값에 사들인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정부 예산을 개인에게 넘긴 배임죄에 해당한다. 사실이라면 이전까지 제기된 의혹보다 훨씬 심각하다.

 이에 대한 청와대의 설명도 납득하기 힘들다. 청와대는 경호용 부지가 ‘원래 비싼 땅’이라고 한다. 하지만 거래를 중개한 부동산업자나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시형씨는 싸게 샀고, 경호실은 비싸게 샀다. 밭의 경우 인근 시세는 3.3㎡당 400만~450만원이라고 하는데, 시형씨는 274만원에 샀고 경호실은 628만원에 샀다. 판 사람은 한꺼번에 돈을 받아 필지별 가격을 모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필지별 땅값은 청와대가 임의로 나눴을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이런데도 청와대는 여전히 안이하다. 서울시장 선거를 앞둔 야당의 정치공세라는 인식이다. 선거에 악영향을 막기 위해 우선 급한 불만 끄자는 식이다. 땅이 넓다는 지적에 “일부 팔겠다”고 한다. 실무자에 대한 문책 얘기도 나온다. 모두 지엽말단(枝葉末端)에 불과하다.

 전 재산을 기부한 대통령이 사소한 이익을 위해 불법을 저질렀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대통령의 도덕성이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것은 현실이다. 대통령이 직접 진상을 파악하고, 국민 앞에 설명하고, 필요하다면 사과하고 사저 건립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