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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박원순, 병역문제 솔직히 밝혀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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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야권 단일후보 무소속 박원순 변호사가 3년 내외 현역병이 아니라 8개월 방위병(면사무소 근무)으로 병역을 마친 사실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박 후보는 1969년 7월 작은할아버지에게 양손자로 입양되었다. 입양 3개월 전 당숙(작은할아버지의 아들)이 사망하였으므로 박 후보는 ‘부선망 독자(父先亡 獨子·아버지를 여읜 외아들)’ 규정에 따라 방위 근무를 한 것이다. 박 후보의 입양으로 원래 호적에 남은 그의 형도 독자가 되어 역시 같은 병역 혜택을 받았다.

 한나라당은 박 후보의 양친이 아들들의 병역축소 혜택을 노려 법에도 없는 양손(養孫) 입양을 시켰다고 주장한다. ‘기획 입양’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후보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양친이 그런 병역법 규정을 알았을 리가 없다고 반박한다. 그리고 입양은 일제하 징용에 끌려간 작은할아버지의 제사를 모실 후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양손 입양은 당시에는 관례였다고도 했다.

 한국 사회에서 병역 문제는 매우 민감한 부분이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적 지도자로 인정받으려면 국가 방위에 헌신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 국민들의 공감대다.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 후보는 아들의 병역면제로 두 번이나 커다란 타격을 입은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대선 때 질병으로 인한 병역면제를 소상히 해명해야 했다. 그런 점에서 ‘박원순 병역’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높을 수밖에 없다.

 박 후보의 양손 입양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손이 끊긴 집의 제사를 위해 입양하는 것이 당시의 풍습이었다 해도 그 이유만이었다면 좀 더 나이가 든 이후에 할 수도 있었다. 어차피 나이가 든 뒤에야 제사를 지낼 수 있고, 박 후보 작은할아버지의 서류상 사망 처리도 2000년에 했다. 박 후보 형제가 현역병 근무를 정상적으로 마친 후에 입양을 해도 됐다는 말이다.

 그러나 박 후보는 입양 당시 13세였다. 병역 문제를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다. 그런 박 후보를 병역 기피라고 공격하는 건 무리다. 흠집을 내기 위한 시비로 비칠 수밖에 없다. 설령 집안 어른들이 병역 혜택을 의식했다 하더라도 그 책임을 13살짜리였던 박 후보에게 추궁하는 것은 지나친 정치공세다.

 박 후보의 태도도 문제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자신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투명하게 밝히는 게 의무다. 본인이 의도했건 아니건 가족들이 석연치 않은 방법으로 사회적 의무를 다하지 못하게 됐다면 그 경위를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또 법의 차원을 넘어서 지도자로서 잘못된 혜택을 받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면 사과를 하는 게 옳다. 본인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부분까지 굳이 합리화하려고 말을 바꾸니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런 태도는 병역 문제보다 지도자에게 더욱 심각한 신뢰 문제로 번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