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벤처CEO 건강 적신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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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CEO들의 ‘테헤란 밸리 증후군’은 당초 예상보다 심각했다. 응답자들은 자율신경계 질환과 VDT 증후군의 대표적 증상을 적어도 2∼3가지 갖고 있었고, 이러한 현상이 만성화되고 있는 경향도 뚜렷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호소한 증상은 ‘뒷목이 뻣뻣하거나 어깨가 결린다’(61.3%)
는 것이었다.

분당 차병원 정신과 서신영 교수는 “사람의 신체 중 뒷목엔 가장 긴 근육이 있기 때문에 긴장과 스트레스에 제일 먼저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불안장애와 같은 심리적 원인으로 정신과를 찾는 환자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증상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많은 것이 신경정신계 증상으로, 쉽게 피로를 느끼고(48.6%)
, 기억력(43.0%)
과 집중력(35.2%)
이 떨어지고, 잠을 설치거나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들(38.0%)
이 전체의 35∼49%에 달했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 교수는 “과로와 스트레스는 일시적으로 뇌기능을 저하시켜 집중력을 떨어뜨리는데 이것이 장기화되면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海馬)
부위가 위축돼 기억력까지 떨어뜨린다”고 말한다. 게다가 불안·우울 등으로 자율신경계의 균형이 깨지면서 수면장애로 이어진다.

특히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감정에 투영돼 적개심이나 공격적인 성격이 드러날 수 있다. 현실에 대한 판단능력이 떨어지고 대인관계가 원만치 않은 등 反사회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불안·초조·우울 등 심리적 불안정 상태가 결국은 신체화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벤처CEO들은 ‘속이 더부룩하거나 소화가 잘 안 된다’(36.6%)
, ‘헛배가 부르고 가스가 잘 찬다’(19.0%)
, ‘변비에 자주 걸리거나 설사를 자주 한다’(15.5%)
-소화기계, ‘성욕이 떨어진다’(14.1%)
, ‘소변이 자주 마렵다’(12.0%)
-비뇨기계, ‘계단을 오를 때 가슴이 아프다’(11.3%)
,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곤 한다’(9.2%)
-심혈관계 등 갖가지 질환의 양상을 드러냈다.

서교수는 “사람이 위험에 처하면 뇌에서 노르에프네프린이라는 호르몬이 나와 스트레스에 반응하게 된다”며 “이 호르몬이 우리 몸에 분포돼 있는 어느 자율신경 부위를 자극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예컨대 방광으로 가는 신경에 작용하면 자주 소변이 마렵고, 대장과 관련된 자율신경을 자극하면 설사·변비와 같은 과민성 대장증후군에 걸린다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위궤양이나 고혈압·심근경색·뇌졸중 같은 성인병은 물론 알레르기, 잦은 감기, 암 등 온갖 병의 ‘방아쇠’ 역할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같은 환경, 같은 스트레스 강도에서도 사람마다 반응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신교수는 “경쟁적이고 조급한 A타입의 사람들이 심장병과 같은 신체화 증상이 심하다”고 말한다.

A타입이란 스트레스를 처리하는 방식을 기준으로 분류한 성격 중 하나. 이런 사람이 운동부족에 흡연까지 하면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대단히 높다. 또 기대치는 높은데 자신의 노력이 성과에 잘 반영되지 않을 때 위궤양이나 위염에 잘 걸리고, 공격적인 성향이 잘 풀리지 않으면 긴장성 두통이나 편두통에 시달린다.

전문가들은 “벤처 기업을 하는 사람들은 단기간에 높은 성과를 얻으려고 하는 경향 때문에 스트레스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서교수는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 중 70%가 이러한 노이로제 때문에 온다”며 “응급실에 실려오는 사람들 중엔 불안상태가 극도로 심해 곧 죽을 것 같다고 압박감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상태가 심각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작은 증상 하나도 벤처CEO들로서는 무심코 지나쳐서는 안 될 건강의 적신호다. 예컨대 ‘입안이 자주 헌다’(11.3%)
든지 ‘구역질이 난다’(9.2%)
든지 ‘입이 마른다’(19.0%)
든지 하는 사소한 증상은 당장 휴식을 취하거나, 생활태도를 바꾸라는 인체의 경계경보이다.

입이 마르는 현상은 스트레스의 강도가 높아 침샘이 위축되는 현상이다. 입안이 자주 헐거나 추위 또는 더위를 쉽게 타는 것(16.2%)
은 면역력의 저하와 관계가 있다. 단말기와 관련된 VDT증후군으로는 ‘뒷목이 뻣뻣하다’, ‘시력이 나빠진 것 같다’(32.4%)
, ‘눈이 침침하고 어른거린다’(31.7%)
, ‘허리가 아프다’(20.4%)
, ‘손발이 저리다’ (12.7%)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증세 역시 정기적인 휴식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테헤란 밸리 증후군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람의 몸과 마음은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항상성이 있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 변화는 스트레스의 요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스트레스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모험과 도전으로 전환시킨다면 생산적인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다.”(신교수)
미국의 로버트 클리겔 박사가 제시한 이른바 C형 인간으로 의식을 바꾸라는 것.

C형은 A형과는 반대되는 성격으로, 직장에서 자신감과 스트레스에 대한 통제력으로 성공하는 타입을 말한다. 벤처 비즈니스는 그 자체가 모험이므로, C형으로 전환한다면 스트레스도 극복하고 성공의 길로 접어들 수도 있다.

각별히 유의할 점은 술이나 담배, 도박 같은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지 말 것. 술은 일시적으로 긴장을 떨어뜨리지만 술기운이 떨어지면 스트레스 강도가 2배로 올라간다.

직장인들이 어울려 한두 잔 즐겁게 마시는 것은 좋지만 술에 의존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담배나 도박도 마찬가지. 특히 이들의 중독성은 깊은 잠을 방해해 토막잠을 자게 만드는 등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 서교수는 심폐기능을 강화하는 근육운동을 권한다.

“정신적으로는 피로한데 육체는 피로하지 않은 불균형 상태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달리기나 근육운동을 통해 육체를 피로하게 만드는 행동요법이 필요합니다.”

●스트레스 이기는 ‘10계명’…스트레스는 성장의 양식

① 스트레스 환경을 탓하지 말고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가 살피라. 일이 과도하게 몰려 있나?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빚고 있나? 과욕을 부리고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 자문해 보고 해당하는 문제들을 적어 보라.

②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하라. 불가능한 일을 쫓느라 시간과 건강을 해칠 필요는 없다. 능력이 안 되면 아예 포기하라.

③ 스트레스나 피로를 느끼면 이완요법을 실시하라. 조용한 곳에서 10분 정도 명상을 하는 ‘인스턴트 참선’을 즐겨 보라. 활력을 주는 알파파의 증가를 느낄 수 있다.

④ 뭐든지 잘 하려고 들지 말라. ‘잘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은 불안을 가져오고, 능력을 반감시킨다.

⑤ 피로를 느끼면 기분전환을 하라. 강도 높은 운동, 이완 훈련, 영화감상 등으로 변화를 꾀하라.

⑥ 스트레스를 짧은 시간에 해결하려고 들지 말라. 조급해지면 더욱 스트레스를 받는다.

⑦ 우울할 땐 중요한 일부터 하지 말라. 쉬운 일부터 해 머리를 워밍업한 뒤 판단력·분석력·결단력 등이 필요한 일을 하라.

⑧ 실패가 더 큰 성공으로 이끈다고 생각하라. 실패에서 무엇을 배울까 하는 자세로부터 인생의 질은 변화한다.

⑨ 스트레스는 성장의 양식임을 항상 상기하라. 사람은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하고는 성숙할 수 없다.

⑩ 스트레스 매니지먼트의 성공여부는 결단에 달려 있다. 우유부단하게 끌면 끌수록 스트레스는 더 큰 압박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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