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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이미 알려진 정보를 남과 다르게 ‘편집’해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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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호 25면

종이로 된 신문을 읽는 사람 손 들어봐요! 어제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60명 중에 5명이 손을 들었다. 그것도 아버지가 보는 신문 곁에서 훔쳐보는 수준이란다. 우리 집에도 대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하나 있다. 그놈이 신문 읽는 것을 본 기억이 전혀 없다. TV 뉴스도 물론 안 본다. 그래도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대충 아는 듯하다.

[김정운의 에디톨로지 창·조·는·편·집·이·다]③지식권력이 이동하고 있다

기자들만 모르는 신문의 현실
대부분 포털 사이트에 떠 있는 뉴스 헤드라인만 읽는다. 그것도 전날의 TV 예능 프로그램 내용을 정리한 기사들이 대부분이다. 정말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정치사회적 뉴스는 주변 사람들의 트위터를 통해 날아온다. 그저 클릭해서 그 기사만 볼 따름이다. 신문을 한 장씩 넘기다 우연히 기사를 읽는 경우는 없다는 이야기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정보가 공유되고 지식이 구성되는 세상의 변화에 대해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민주주의에는 자유롭고 건강한 언론이 중요하다. … 뉴스를 모으고, 편집하는 조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나는 미국이 블로거들의 세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편집자가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지난해 열린 월스트리트 저널 주최의 All Things Digital, 여덟 번째 콘퍼런스에서 이야기한 내용이다(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스티브 잡스가 죽었다. 나와 전혀 관계없는 외국인의 죽음에 이렇게 멍해 보기는 처음이다. 아, 내 책상에 널려 있는 애플 기기들에 대한 미련을 빨리 버려야 한다).

에디터, 즉 편집자에게로 권력이 이동하고 있음을 눈치 빠른 스티브 잡스도 알게 된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이 발언의 배경은 이렇다. 아이폰 4G가 출시되기 직전, 애플의 한 직원이 비밀에 부쳐진 신형 아이폰의 시제품을 술집에 두고 나왔다. 정보기술(IT) 관련 유명 사이트인 기즈모도는 이 시제품을 입수해 신형 아이폰의 디자인과 기타 기술적 사양들을 애플의 허락 없이 공개했다. 이에 분노한 스티브 잡스는 미국이 블로거들의 세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제멋대로 정보를 수집해 공개하는 블로거들을 비판한 것이다.

정보가 부족한 세상이 더 이상 아니다. 정보는 넘쳐난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당시만 해도 정보가 부족해서 외국으로 유학을 가야 했다. 대학 시절, 도서관의 카드함을 뒤져 제목과 간단한 요약문만을 읽고 책을 신청해야 했다. 그러나 몇 시간 지나 사서가 내민 책의 내용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원하는 전문잡지도 없었다. 구독신청을 하면 1년은 족히 걸렸다. 내가 독일에 유학을 가 감동한 것은 도서관의 규모였다.

베를린 자유대학의 심리학과 도서관의 크기는 내가 다녔던 고려대학교의 도서관만 했다. 책은 모두 개가식이었다. 원하는 대로 다 빼 볼 수 있었다. 서가 사이로는 초록색 카펫이 깔려 있었다. 나는 그 바닥에 주저앉아 책의 목차는 물론, 내용까지 쭉 훑어보고 난 후대출했다. 보고 싶은 학술잡지도 찾는 대로 다 있었다. 정말 제대로 공부한다는 느낌이었다.

불과 20년 만에 세상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이제 정보가 없어 유학 가는 세상이 아니다. 내가 다녔던 베를린 자유대학 심리학과 도서관은 인터넷으로 언제든 들어갈 수 있다. 문 닫는 시간도 없다. 24시간 개방이다. 하버드 대학도 마찬가지고, 일본의 와세다(早稻田) 대학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정보는 공짜로 내려받을 수 있다. 아무리 귀한 자료도 일정 비용만 내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구태여 외국 도서관을 헤매고 다닐 필요도 없다. 국내 전국 대학의 도서관은 네트워크로 다 연결되어 있다. 우리 대학 도서관에 해당 자료가 없어도 다른 대학 도서관에 있으면 언제든지 대출해 읽을 수 있다. 말 그대로 검색하면 다 나온다.

이젠 제멋대로 널려 있는 정보를 편집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편집의 시대에는 지식인이나 천재의 개념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많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지식인이었다. 남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정보를 외우고 있으면 천재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노래방 기계가 나온 후엔 노래 가사, 휴대전화가 나온 후엔 전화번호 외우는 사람 없다. 마찬가지다. 지식인은 정보를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다.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잘 연결하는 사람이다. 천재는 이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남과는 다른 방식으로 엮어내는 사람이다.

우리가 인터넷 주소로 매번 쳐야 하는 www의 의미야말로 변화한 지식편집의 권력관계를 상징적으로 잘 드러내준다.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이란, 단어의 뜻 그대로 세상의 모든 지식이 그물망처럼 얽혀 있다는 것이다. 이 그물망의 컨텍스트에서 지식권력은 처음부터 체계화되어 있거나 조직화되어 있지 않다. 권력의 중심은 그물의 한쪽을 누를 때 생겨난다. 처음부터 권력의 중심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누르는 곳이 권력이 중심이 된다. 몇 개의 지식이 경쟁할 경우, 보다 강하게 누르는 쪽으로 권력이 몰리게 되어 있다. 그곳을 중심으로 모든 지식들이 편집되어 하나의 지식시스템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중심은 수시로, 아주 빨리 바뀐다.

교수들만 모르는 권력의 이동
그물망식 지식시스템의 반대편에는 위계가 분명한 계단 모형의 지식시스템이 있다. 이 지식시스템의 권력은 대학, 논문, 학회와 같은 제도를 통해 유지된다. 대학만을 졸업한 학사의 지식은 대학원을 졸업한 석사의 지식보다 못하다. 공식적으로 그렇다. 석사의 지식은 박사의 지식만 못하다. 법적으로 그렇다. 그래서 박사와 석사의 강사료는 법적으로 다르게 책정되어 있다. 박사이면서, 교수이면 지식권력 계단의 정점에 서 있게 된다. 세상에 무서운 게 없다. 그래서 ‘교수 세 명 데리고 부산 가기가 양 100마리 몰고 부산 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박사이지만 만년 강사로 지내는 이들을 ‘석좌강사(?)’라고 한다. 독일에서 공부한 박사들, 특히 인문학 전공 박사들 대부분은 ‘석좌강사’로 지낸다. 한국 대학의 지식권력은 대부분의 미국 유학 출신 교수들에게 있는 까닭이다. 학풍도 다르고, 학문의 지향점도 다르다. 어려운 단어들만 골라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는 듯한 독일파가 설 자리는 별로 없다. 전공학과가 따로 없는 교양학부 교수이지만, 교수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나는 독일유학파치고는 무척 운이 좋은 편이다.

박사이면서 교수까지 되는 일은 지식권력의 최정점에 서는 일이다. 독일 교수가 제일 폼 난다. 독일 교수들은 자신의 명함에 박사와 교수를 함께 붙인다. 석사학위에 해당하는 디플롬 학위까지 붙이는 경우도 많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부르는 명칭도 요란하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이런 식이다. “존경하는 교수이자 박사이며, 디플롬 심리학자이신 김정운씨, ….” 전화번호부는 물론이고 집의 문패, 기타 주소록에도 교수, 박사, 디플롬 학위를 써 넣는다. 전후 맥락 없이 보면 웃길 정도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정말 교수 할 만하다.

박사이고 교수이면서 학회 회장이나 학술지 편집장직까지 겸하면 금상첨화다. 전문학술지의 심사위원은 지식권력의 꽃이다. 학술진흥재단에서 인정하는 ‘등재지’ ‘등재후보지’에 논문이 실리는 일은 교수직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Science Citation Index)’ ‘사회과학논문인용색인(SSCI:Social Science Citation Index)’에 해당하는 논문을 쓸 경우 수백만원의 연구지원금이 나오기도 한다. 그 유명한 ‘네이처(Nature)’나 ‘사이언스(Science)’지에 논문이 실리면 말 그대로 팔자 고친다. 그런데 2005년 한국에서 황우석 사건이 터졌다.

‘네이처’와 ‘사이언스’, 세계 최고의 두 잡지에 논문을 실은 황우석 교수의 논문이 허위라는 것이다. 세계적인 잡지의 전문 심사위원들이 검증하고 인정한, 국내 최고 대학교수의 논문을 어설퍼 보이는 젊은이들이 인터넷에서 갑론을박을 벌이더니 그 논문의 핵심은 최고의 생명과학기술이 아닌, 최고의 포토샵 기술이라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충격은 실로 엄청났다. 그러나 황우석 사건과 관련된 충격의 본질은 그의 논문이 참인가 거짓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적 자존심의 문제 또한 아니다. 지식이 대학에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논문’이라는 형식으로 만들어지고, 이를 심사하고, 그 결과에 권위를 부여하는 지식권력 시스템의 본질이 흔들리는 위기와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이에 관해서는 아무도 얘기 안 한다.

위기의 징후는 또 있다. ‘미네르바 사건’이다.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한국에도 경제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경고의 글이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후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기고한 100여 편의 글은 한국의 환율변동, 주가지수 변화에 관해 믿기 어려운 예언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그의 글들은 실제 상황과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남의 칭찬에 참으로 인색한 대학교수들조차 미네르바야말로 최고의 경제전문가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회적 반향이 심상치 않자, 기획재정부 장관까지 나서서 반론을 제기했다. 결국 허위사실 유포라는 황당한 방식으로 미네르바를 잡아들인다. 그런데 잡고 보니 더 황당했다. 미네르바는 경제전문가가 아니었다. 교수도 아니었다. 전문대 출신의 무직자였다. 그 엄청난 경제지식과 경제변동에 관한 정확한 예측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미네르바 자신은 인터넷상의 잡다한 지식을 짜깁기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인정하기 싫은 이들은 지금까지도 잡힌 미네르바가 가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또한 황우석 사건과 마찬가지다. 미네르바가 가짜냐 진짜냐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황우석과 미네르바 사건은 지식권력의 이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식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종이 위에 씌어진 텍스트 중심의 논문식 지식편집과는 전혀 다른 지식구성 원리가 숨겨져 있다. 논문을 쓰고, 이를 심사하고 학위를 주는 방식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문명사적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하이퍼텍스트(Hypertext), 즉 탈(脫)텍스트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다 컴퓨터의 마우스 때문이다. 마우스는 그냥 쥐가 아니다!(마우스와 하이퍼텍스트에 관한 내용은 다음 호다. 기대해도 좋다.)



김정운 문화심리학 박사.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와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등의 저서와 방송 활동, 특강을 통해 재미와 창조의 철학을 펼치고 있다. cwkim@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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