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를 점령하라” … 백악관까지 닥친 ‘뉴욕의 가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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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자본을 규탄하며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거리 시위가 수도 워싱턴까지 번졌다. 6일(현지시간) 시위대가 의사당이 뒤로 보이는 거리에서 행진하고 있다. [워싱턴 로이터=뉴시스]

6일 정오(현지시간)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한복판에 위치한 프리덤(자유) 광장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백악관에서 불과 300여m 떨어진 곳이다.

‘탐욕스러운 기업과 월스트리트를 처단하라’ ‘정치인들은 돈에 굴복하지 말고 미국인들(의 요구)에게 굴복하라’는 현수막이 보였다.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를 본뜬 ‘워싱턴 DC를 점령하라(Occupy DC)’ 시위다.

 이날 참가자는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우스꽝스러운 광대 복장에서 군인까지 참가자들의 패션은 자유로웠다. 한 사람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주변에 플래카드를 들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흥겹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버지니아주 리스버그에서 온 리처드 버든은 “정부는 시민을 위해, 기업은 종업원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며 “이를 망각한 미국 사회가 혐오스럽다”고 말했다.

뉴욕에서 온 대학생 케빈 키스닉은 “뉴욕에서도 시위에 참가했다”며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해 워싱턴으로 왔다”고 말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출신의 피터 브랙퍼스트는 “기업의 탐욕을 알리기 위해 이곳에 왔다”며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들이 세금은 적게 내는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울분을 토로했다.

 곳곳에서 ‘전쟁은 이제 그만 멈춰라’ ‘기업의 탐욕을 증오한다’ 등의 팻말이 나부꼈다. 어린 아들의 유모차에 ‘엄마와 아들이 미래를 위해 들고 일어났다’는 플래카드를 붙이고 나온 가정주부도 있었다. ‘우리는 (미국민의) 99%다’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시위대는 광장 행사를 마친 뒤 연방정부 청사가 밀집해 있는 거리로 행진을 벌였다. 저녁 때는 의사당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별다른 폭력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시위대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백악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최근 시위 사태에 대해 “미국인들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는 진행자의 전언에 박수와 함성을 쏟아내며 환호했다. 그러나 시위 참가자들의 주장은 한목소리가 아니었다. 대부분은 정부의 무능과 기업의 탐욕을 비판하며 개혁을 요구했지만 반전(反戰), 여성 권익 보호, 환경 보호 등 다양한 메시지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지지자들만 모인 게 아니라 공화당 지지자들도 뒤섞여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오바마가 월스트리트의 투기를 조장했다” “(보수성향 단체인) 티파티를 몰아내라”는 주장도 있었다. 광장 한쪽에 마련된 무대 위에서는 랩 가수가 나와 분위기를 띄웠다. 월가 시위가 미국의 심장부 워싱턴에 성공적으로 확산한 분위기였다.

한편 로스앤젤레스(LA)에서는 500여 명이 도심에서 시위를 벌였으며, 이 가운데 11명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건물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다 무단침입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이들은 문짝만 한 크기의 6730억 달러짜리 수표를 제시하면서 현금을 내놓으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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