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복지병? … 10년 이상 정부지원으로 연명 23만 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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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에 사는 김모(55)씨는 10년 전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그 무렵 아내와 이혼하면서 빈털터리가 됐다. 딸은 시집간 후 김씨를 찾아오지 않고, 미혼인 아들은 월 140만원가량을 벌지만 거의 연락이 없다. 지난 10년간 이것저것 해보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최근엔 당뇨합병증 때문에 일할 생각이 더욱 없어졌다. 그는 남은 인생도 정부 지원을 받으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빈곤층의 자활을 돕기 위해 2000년 10월 도입된 기초생활수급제도의 부작용으로 우려됐던 ‘복지 의존증’이 예상 외로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스 재정 위기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번 정부 지원에 익숙해지면 복지에 의존하려는 욕구는 갈수록 커지는 것이다. 충남의 김씨처럼 10년 이상 ‘붙박이 수급자(항상 빈곤층)’로 생활해 온 가구가 기초생활수급 10가구 중 3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지원이라는 당근에 길들여진 빈곤층이 기초생활수급제도 안에 갇혀 버린 것이다.

 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한나라당 강명순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기초생활보장제도 관련 통계를 분석한 결과 10년 이상 생계비 지원을 받은 가구는 23만4000여 가구에 달했다. 전체 수급 가정 87만8000여 가구 가운데 26.7%에 이르는 수치다.

 

수급자 신세를 면한 뒤에도 다시 또 생계비 지원을 신청하는 ‘습관적 수급자(반복빈곤층)’도 최근 5년간(2006년 6월부터 올해 8월 말 기준) 11만441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가구주 연령 현황을 보면 50대 가구주가 2007년 말 14만 가구에서 올해 17만7000여 가구로 증가했다. 이는 정년 연령이 낮아지고, 자녀 학자금 등 경제적 부담으로 50대 가구주의 부담이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30대, 40대 가구주는 2007년과 비교해 각각 2만 명, 1만4000명가량 감소했다. 전체 기초생활수급자 수는 2000년 시행 당시 155만 명에서 올해 8월 현재 148만 명으로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자활사업을 통해 빈곤해 탈출한 성공률은 2001년 7.9%에서 올해 3.5%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중 취업이나 창업을 통한 빈곤 탈출률도 6.5%에서 1.7%로 감소했다.

 강 의원은 “생산적 복지를 표방했지만 실제 자활을 조건으로 하는 수급자는 일부에 그쳤다”며 “수급자로 오래 머물러 있을수록 주저앉게 되기 때문에 근로의욕을 높일 수 있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유미 기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2000년 10월 시행된 복지 제도로 최저생계비 이상의 생활 수준 보장이 목적이다. 일할 능력이 있으면 자활 관련 사업 등에 참여한다는 조건하에 생계비를 지급하고 있다. 연령이나 근로 능력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점이 이전의 생활보호제도와 다른 점이다. 올해 4인 가족 기준 최저생계비는 143만9413원(1인 가구는 53만2583원)이다. 소득이 이에 못 미쳐 수급자가 된 대상자는 최저생계비에서 소득을 뺀 만큼의 생계비 지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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