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루이뷔통이 왜 중국인 디자이너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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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
중국연구소 부소장

역시 수요가 문제다. 공급은 넘쳐나는데 이를 받아줄 소비자가 없다는 데서 지금의 경제위기가 태동한 것이다. 그동안 미국 소비자가 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내 마이너스 통장에 구멍이 났다’며 손을 들었다. 미국인을 대신할 소비 세력이 필요하다. 경제전문가들은 그래서 중국, 더 구체적으로는 중국 중산층을 바라본다.

 베이징에 살고 있는 류(劉·37)선생은 게임 관련 벤처 업체의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는 지금 아내·딸과 함께 한국 관광을 즐기고 있다. 그는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난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 생활비 쓰고 나면 남은 돈은 얼마 안 된단다. 생활상을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아내의 급여를 포함한 그의 가구 수입은 한 달 약 1만3000위안(약 230만원). 30평 규모의 아파트에 살고 있고, 최근 13만 위안짜리 승용차를 샀다. 주말 점심과 저녁은 외식하는 경우가 많다. 내년에는 싱가포르 여행도 계획하고 있다. 그는 분명 중산층인 셈이다.

 최근 미국 브루킹스연구소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중산층 인구는 약 1억5000만 명(1인당 연소득 6000~3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2020년에는 6억7000만 명까지 늘어 인구의 절반 정도가 중산층 대열에 합류할 전망이다. 중산층의 부상은 소비 증가로 이어진다. 보고서는 전 세계 소비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이 현재 약 4%수준에서 2020년 13%로 증가해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산층의 성장은 중국 지도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의식수준이 높아진 그들은 더 이상 관료들의 부정부패에 침묵하지 않는다. 자신의 경제적 이익이 침해당했다 싶으면 거침없이 시위에 나서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70, 80년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반독재 정치 투쟁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구심점이 돼야 할 지식인의 절대다수가 ‘서구식 민주정치는 중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류 선생은 “공산당 이외의 정치적 대안은 없다”며 “서구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중국의 정치 위기는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말했다.

 ‘중국 중산층 마케팅’은 이제 세계 소비업계의 화두가 됐다. 컨설팅업체인 맥킨지가 ‘중국 중산층을 위한 맞춤형 상품을 만들라’고 충고할 정도다. 루이뷔통, 까르띠에 등 글로벌 브랜드들은 아예 중국 디자이너를 고용하기도 한다. 그들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느냐에 기업 사활이 걸려 있다는 인식에서다.

 우리 기업은 과연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중국 중산층의 소비 패턴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는가? 중국발(發) 글로벌 소비지도 변화를 바라보면서 던져보는 질문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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