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목표달성' 의 겉과 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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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과 유행에 따라 옷을 바꿔 입듯 TV 오락프로그램도 유행을 탄다.
몰래 카메라가 인기일 때가 있었고 패러디 코미디가 대세인 적도 있었다. 번지점프 등 연예인 극기훈련류가 꽉 잡는가 싶더니 계몽주의적 선행이 전파를 장악한 적도 있었다.

최근의 흐름은 다큐쇼라고 할 수 있다. 실제상황을 쇼처럼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SBS 〈임백천의 원더풀 투나잇〉에서 매니저 김종석의 대입준비 과정을 마라톤 중계하듯 보여주더니 KBS2TV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의 '박치기왕'에서 코미디언 백재현은 실제로 레슬링 선수가 되기 위해 수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SBS 〈뷰티풀 라이프〉에서는 단신 탤런트 이의정의 키를 늘이는 실험을 진행중이다. 단회에 그치는 게 아니라 몇 달에 걸쳐 장기적으로 한다는 게 공통점이다. MBC 〈목표달성 토요일〉에서는 연예인 아닌 진짜 고등학생 5명이 이른바 꼴찌탈출에 도전한다.

호텔벨맨이 꿈인 우진이, 말주변이 좋아 작가를 지망하는 호진이, 축구를 잘해 체육선생님이 되고 싶은 재덕이, 춤 하나는 끝내주는 요한이, 평범한 회사원을 꿈꾸는 재윤이 등. 이들은 본인과 부모, 학교의 동의하에 지난 2월말부터 방송사가 마련해 준 합숙소에 모여 평소 안 하던(?)공부를 시작했다.
드디어 지난 주에 중간고사 결과가 나왔다. 성적이 그대로인 아이도 있었고 조금 오른 아이도 있었다.

모든 TV가 교육적인 소재를 다룰 필요는 없지만 어떤 TV도 현저하게 비교육적이어서는 곤란하다. 교육적 가치를 표방한 프로그램이 비교육적 태도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우선 방송사가 돈과 시간과 전파까지 제공하며 돕기로 작정한 그 '꼴찌' 라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가. 선각자 서태지가 그의 노래 '교실이데아' 에서 증언했듯이 우리 교육의 근본적 문제점은 획일화와 차별이다.
오로지 성적순이다. 오죽하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라고 외치며 목숨을 끊는 지경에 이르렀겠는가.

학과공부에선 꼴찌일지 모르지만 재치있게 자신을 표현하는 재주에선 호진이가 일등일 수 있다.

축구나 댄스 면에서도 그렇다. 취향에는 등급과 서열이 없다. 각자 다른 꿈을 지닌 아이들을 한자리에 몰아넣고 오직 '성적 올리기' 라는 목표 아래 가두어 두는 것도 문제인데 그 비인도적 상황을 TV에서 매주 보여줌으로써 성적지상주의가 최고의 가치인 양 몰아가는 건 가당치 않다.

교육전문가들까지 합세하여 그 캠페인(?)에 당당한 조역으로 나서는 현실에선 실소를 넘어 걱정이 된다. 기왕에 줄세우려거든 창조적 에너지순으로 하라. 틀에 박힌 모범생보다 창조적 꼴찌가 사회를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든다.

다큐의 생명이 진실이고 쇼의 핵심이 즐거움이라면 다큐쇼는 즐거움이 있는 진실의 마당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보여줄 가치가 있는 진실이어야 한다. 그 시간대에 MBC는 시청률 꼴찌탈출에 성공했다. 목표달성도 중요하지만 그 목표의 조준이 합당했는지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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