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보는 아파트 동 간격 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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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가 아파트 동간 거리를 완화한다는 내용을 담은 일조 등의 확보를 위한 건축물의 높이제한 조례안(제38조)’을 시의회에 2차례나 올렸지만 동의를 얻지 못했다. 건축경기 활성화, 상위법 개정 취지 등을 들어 찬성하는 의원과 규제 완화에 대한 천안시의 절박성 의문, 건축 경기 활성화 근거 미비, 형평성·일조권·사생활 침해 등을 우려한 의원들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전문가들은 건축경기 활성화에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데는 공감했지만 도시 경쟁력이 우선인지 사생활 침해 해소가 먼저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 동간 거리 완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구체적인 의견을 들어봤다.

글=강태우 기자 , 사진=조영회 기자

이광영 남서울대 건축공학박사

“토지 이용률 용이, 디자인 변화 … 도시 경쟁력 생긴다”

-동간 거리 완화로 건축 경기 활성화 가능한가.

 “예측하기 어렵다. 동간 거리를 줄이면 토지 이용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경기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 목적이 건축 경기 활성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여러 요소 중 하나는 될 수 있다고 본다. 건축 경기 활성화에만 포커스를 맞추면 본질적인 부분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한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좋은 일 아닌가.

 “나쁘지는 않지만 꼭 좋다고도 할 수도 없다. 동간 거리를 줄인다고 건설사가 아파트를 많이 지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세대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동간 거리 완화 보다 오히려 용적률을 높이는 게 낫다. 용적률이 높으면 아파트를 더 높게 지어 그만큼 많은 세대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설사 입장에서는 동간 거리 보다 용적률을 높여주는 정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완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나.

 “미래 도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동간 거리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동간 거리로는 도시의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동간 거리가 줄면 그만큼 건설사에서 아파트를 짓기 위한 선택의 폭이 많아진다. 그렇게 되면 도시경관도 좋아질 것이다. 경관을 살리고 일조권이 동일한 조건이라면 도시 경쟁력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거리가 좁아 입주자의 조망권이 다소 불리하더라도 도시 전체적인 경관을 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선택의 폭, 도시경관 어떻게 좋아진다는 얘긴가.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건 동간 거리가 줄어 조망권이 불리해 질 것을 감안한 건설사가 타워형의 아파트를 짓는 방식으로 나름의 변화를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민족은 남향을 좋아하다 보니 건설회사가 이를 무시 못하고 모두 성냥갑 같은 판상형 남향만을 많이 지어 왔다. 동간 거리가 완화되면 건설사가 경관을 고려해 남동향 등으로 변화를 줄 수 있고 높이도 달라질 수 있다. 디자인 측면에서도 다양성을 줄 수 있다. 특색있는 아파트가 많이 생기면 도시 이미지가 좋아지게 된다. 이는 도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원인이 된다. 도시경관이 좋으면 쾌적한 도시가 된다. 경관이 좋은 도시는 그만큼 매력있는 도시를 의미하기도 한다”

-거리가 좁아지면 일조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나.

 “건설사가 동간 거리를 좁히더라도 이윤만 생각해 기존대로 아파트를 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천안시의 도시계획·건축심의 등을 통해 방지할 수 있다. 요즘 도시민들은 똑똑하다. 시민들은 디자인도 경관도 조망도 떨어지는 아파트에 입주하지 않는다. 건설사는 굳이 일자형 아파트를 고집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다. 요즘 타워형 아파트가 좋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실제 타워형 아파트가 기존 판상형 아파트 보다 경관이 더 좋다. 같은 용적이라도 좌우가 막힌 답답한 아파트와 앞은 막혀도 좌우가 시원하게 트인 타워형 가운데 어떤 아파트를 선택할 지는 소비자의 몫이지만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일조권 문제도 동간 거리와 상관없이 저층은 똑같이 불리하다. 천안시가 검증해 허가해 주면 된다”

-사생활 침해, 형평성 문제 소지는 없나.

 “한 층 높이가 평균 3m임을 가정하면 15층이면 45m다. 실험 결과 사람의 형체 즉 윤곽인식이 가능한 거리가 45m정도였다. 이 정도 거리면 어느 정도 사생활을 보장할 수 있다. 저층의 경우 동간 거리가 줄어들면 그만큼 피해를 볼 수 있다. 반대로 층수가 높은 아파트는 높이만큼 동간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에 15층 이상에서는 사생활 침해 소지가 크지 않다. 형평성 문제는 소비자가 주거 여건이 좋은 곳으로 가는 선택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동 사이 간격 어떻게 봐야 하나.

 “동간 거리 완화는 높이, 일조, 경관, 건축 디자인, 도시 경쟁력 등 복합적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다. 거리 완화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로 시민들의 불편함이 부각될 소지도 있지만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중요하다. 건설사 의지를 보고 소비자들은 선택할 것이다”

김행조 나사렛대 부동산학박사

“예측 아닌 현실 따져야 … 지역 실정 맞는 시책 필요하다”

-건축경기 활성화 도움되나.

“긍정적인 부분은 있지만 전반적으로 침체돼 있는 건축경기를 살릴 수 있다고 보진 않는다. 건축경기 침체가 천안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수도권을 비롯해 지방도시에까지 이르는 총체적인 문제이다. 천안만 하더라도 미분양아파트는 6월 말 현재 4515세대로 전국대비 6.2%, 충남의 64.5%를 차지하고 있다. 사업 계획승인 후 미착공 공동주택도 7000여 세대에 달하고 있다. 건설업계를 비롯해 재개발·재건축에 임박해 있는 조합은 동간 거리 완화로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일시적인 현상에 머무를 것이다. 지방 도시 실정에 맞는 용적률과 건폐율을 완화한다든지, 세제지원이나 금융지원 등 수도권과 이원화된 제도적인 시책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다”

-완화의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하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필요성이 있다고 보지않는다. 인구밀도가 높은 수도권과 지방 도시는 다르다. 도시 특성을 감안한 시책이 필요한 이유다. 인구밀도가 높고 초고층 공동주택 공급이 계속적으로 필요한 수도권의 경우에 동간 거리 완화는 충분히 고려해 볼만한 사항이다. 천안도 신도시와 새로운 산업단지에 있어서는 건물의 층고가 높아지므로 일부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수도권에 비해 천안은 인구밀도를 볼 때에 아직은 시기상조다. 천안이 수도권처럼 3종 일반주거지역이 많지 않고 대부분 15층 이하의 공동주택이기 때문이다. 다만 향후 적절한 시기에는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특히 원도심과 재건축·재개발지역에서는 필요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것도 천안시의 전체적인 건축경기의 활성화를 위해 시민들의 일조권을 침해하는 불편을 감수하기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부동산 경기에 미치는 영향을 전망한다면.

 “건설경기는 부동산 경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지만 동간 거리 완화는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완화가 필요한 수도권과 천안은 분명히 여건이 다르다. 천안은 아직 초고층 아파트의 공급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동간 거리 완화로 우려되는 문제점은.

 “일조권은 생활에 있어서 기본권의 문제다. 자신의 건물 앞에 큰 건물이 서 있어 태양빛을 전혀 받지 못하는 그늘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앞 건물 주인이 태양을 전세 낸 것 같지 않겠는가. 건물 위치와 규모가 어떻든 동일한 생활조건을 맞춰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위치에서도 최소한의 기본권을 지켜주는 것이 헌법의 기본권이다. 건물의 일조환경 요소인 건물의 방위각과 동간 거리, 건물형태(높이, 길이, 건물 폭, 측면거리) 변화에 따른 일조시간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건설경기는 다소 회복될 수 있다 하더라도 동간 거리 완화가 입주 후 생활하게 되는 주민들의 불편으로 고스란히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만 한다. 이는 ‘단순히 잘 될 것이다. 피해가 없을 것이다’는 예측이나 기대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하고 주민생활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거리 완화에 따른 장점도 있지 않나.

 “분양가 인하나 소형아파트 공급이 늘어날 수도 있다. 재개발·재건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토지이용이 여유로워져 입주민들이 선호하는 아파트 공급이 늘어나 미분양으로 인한 사회·경제적인 문제 해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대신 동간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입주민간 사생활 침해 가능성도 높아 질 수 있다. 가까운 거리만큼 갈등의 소지가 높다. 그 피해는 입주민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게 된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해외의 사례에서 본다면 어떤가.

 “가까운 일본의 경우 건설경기 붐을 맞아 동간 거리를 완화한 적이 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일자형 공동주택이 아닌 타워형 공동주택으로 건축양식이 변모했다. 대신 동간 거리를 완화하자는 목소리도 커졌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무리한 완화로 개인의 사생활 침해와 단지 내 조경·소음 문제 등 입주민들의 불편이 사회적인 문제로 발생하고 있어 다시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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