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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복지논쟁 … 국민 눈 속이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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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정치권의 복지 논쟁이 혹세무민(惑世誣民·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임)하고 혼란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사회복지 전문가 차흥봉(69·사진)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이 정치권의 복지 논쟁을 강하게 비판했다. 3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 복지정책의 쟁점과 방향’ 토론회에서다.

 차 전 장관은 “요즘의 논쟁이 지나치게 이념과 정파 이익을 앞세워 복지를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해석해 국민들의 눈과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와 일부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선별적 복지가 함께 가는 게 맞는데 보편주의만을 내세우는 것은 국민의 눈을 속이는 일”이라며 “가령 소득 보장을 보편주의 형태로 하면 모든 국민에게 같은 액수의 연금을 줘야 하는데 가능한 일이냐. 선진국도 이미 폐지했다”고 덧붙였다.

 또 “영국식 무상의료, 즉 보편적 의료를 도입하면 의료 이용이 급증해 노인들이 병원에서 거의 살다시피 할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걸 내세우며 표 때문에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복지는 동네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차 회장은 보건복지부 과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냈고 1999년 5월 복지부 장관에 취임한 뒤 의약분업을 시행하고 건강보험을 통합했다. 2000년 8월 장관에서 물러나기까지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틀을 짰고, 이 제도는 그해 10월 시행됐다.

 이날 토론회에서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김연명 교수는 “한국은 질병·실업 등 사회적 위험을 보장하는 장치가 어느 정도 마련된 점 등을 감안하면 이미 서구형 복지국가의 초기단계에 접어들었다” 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리스·포르투갈·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은 복지비용을 많이 쓰는데 잘사는 근로자나 자영업자들이 다 가져간다. 우리도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노동시장의 불평등 구조를 그대로 두고 복지비용을 늘리면 결국 남유럽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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