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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훼손돼야 보수 나서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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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정호
공주대 문화재보존과학과 교수

요즘 웬만한 기업이면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고객관계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은 곳이 없다. 고객이 원하는 걸 찾아내 해결 방안을 제공함으로써 충성도 높은 고객으로 만들자는 것이 CRM이다. 조상의 얼과 숨결을 간직한 문화재 분야에도 CRM(Cultural Resource Management)이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문화유산 관리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화재’ 자체가 타깃 고객이다. 문화재 CRM은 이를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보존·관리하고 활용하는 시스템이며, 미국·유럽 등 문화 선진국에선 오래전부터 실행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문화재 관리는 사후약방문 수준이다.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보수·복원하느라 난리다. 전문가들이 사전에 정기적으로 꼼꼼히 문화재를 돌본다면 안타까운 손상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문화재는 온·습도, 대기오염 등 인위적 요인과 해충·곤충 등 생물학적 요인, 그리고 천재지변 등으로 손상을 입는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미리 점검하는 사전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며, 더불어 정기적이고 반복적인 모니터링이 필수다.

 그러나 현실은 사전 관리 시스템이 미비한 데다 ‘보수 후 관리’도 철저하지 못해 다시 손상되는 사례가 많다. 이 때문에 문화재 CRM 도입이 절실하다. 현장성을 살린 모니터링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또 문화재 항목별 종합적인 보존 현황을 담은 CRM 리포트도 보관해 관리돼야 한다.

 국내에는 문화재보존학과를 개설 · 운영하는 4년제 대학과 전문대가 10곳이 넘는다. 이들이 배출한 문화재 전공자만 수백 명에 달한다. 문화재 보수 전문 업체도 많다. 이들 인력과 기업이 ‘지역 문화재 지킴이’로 나설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서정호 공주대 문화재보존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