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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의 해피 톡톡] 함께 달렸노라, 느꼈노라, 행복했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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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김정수
행복동행 에디터
경원대 세살마을연구원
연구교수


“헉, 헉, 헉, 헉….”

처절하게 산소를 갈구하는 호흡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한 남성 주자가 스쳐 달려가며 절 힐끗 쳐다보기까지, 그게 제가 내는 소리라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남았을까, 이대로 달리다간 쓰러져 죽을지도 몰라, 하는 생각 외에는 감각도 정지한 듯 했습니다. ‘완주를 하면 앞으로 하는 일들 모두 잘 될 거야’하고 스스로 걸었던 주문 때문에, 멈추면 불운이라도 따라올까봐 숨을 헐떡이며 기계적으로 뛸 뿐이었습니다. 드디어 저 멀리 골인지점이 보였습니다. 헉, 헉, 헉, 헉…. 힘내라, 김정수!

지난 18일 오전 한강시민공원 뚝섬지구에서 열린 ‘스마일마라톤대회’ 참가기입니다. 42.195㎞의 진짜 마라톤을 한 건 물론 아니지요. 하지만 난생 처음 ‘5㎞’를 완주했습니다. 집 근처 한강공원에서 가끔 걷거나 달리기만 해봤던 아줌마가 ‘10리가 넘는 거리’를 첫 도전에 36분대 기록으로 성공한 겁니다. 함께 뛴 우리 네 식구 중 최고 성적입니다. 초등학생 큰아들 녀석은 초반에 스피드를 내며 무리를 하더니 결국 1시간 만에 걸어 들어왔지요.

스마일마라톤대회는 대한치과의사협회가 주최한 자선행사입니다. 5㎞·10㎞·하프·32㎞의 총 4개 코스를 걷거나 달리는 데 각각 2만~3만5000원의 참가비를 내면, 그것을 모아 구강암과 얼굴기형환자의 수술을 돕는 겁니다. 지난해 열린 첫 대회에 3500여명이 참가했는데, 그 수익금으로 세 명의 얼굴기형환자가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올해 우리 네 식구가 뛰는 데 10만원의 거금이 들었지만, 얼마 전 남편 친구의 어머님이 구강암 수술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참가하는 의미가 더욱 컸습니다.

‘자선마라톤’의 대명사는 런던마라톤대회입니다. 1981년 시작한 이 대회는 미국의 보스턴·뉴욕마라톤, 네덜란드의 로테르담마라톤과 함께 세계 4대 대회로 꼽힙니다. 런던 그리니치공원을 출발해 템스강변의 관광명소들을 지나는 코스도 아름답지만, 이 대회가 특히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건 나눔의 축제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참가비 외에도 자선기금을 따로 모금해 지정된 단체들을 위해 쓰고, 온갖 특이한 복장을 한 참가자들이 직접 자선캠페인을 홍보하는 역할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최근 달리기를 통해 나눔을 실천하거나 공익 캠페인을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번 ‘행복동행’도 두 명의 아름다운 주자를 소개합니다. 유방암을 이겨낸 뒤 한국유방건강재단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2008년부터 매년 핑크리본 사랑마라톤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서혜경씨와, 오는 10월 경남에서 열리는 유엔사막화방지협약 총회를 홍보하며 지구 사막화 문제의 심각성을 방방곡곡 알리기 위해 울트라마라톤을 하는 산림청 직원 박석희씨입니다. 올해로 11년째 열리는 핑크리본 사랑마라톤대회는 1만원씩의 참가비 수익으로 한국유방건강재단의 활동을 돕고 있습니다.

찾아보면 아름다운 주자가 될 기회가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난 18일, 땀으로 범벅이 된 채 간식과 완주메달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오며 아이들에게 제안했습니다. “우리 내년부터는 봄에도 이런 대회에 참가해볼까? 건강에도 좋고 어려운 사람들도 도울 수 있잖아.” 가을 햇볕 아래 달리느라 발갛게 익은 아이들이 순간적으로 “아악!”합니다.

김정수 행복동행 에디터, 경원대 세살마을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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