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 구제역은 극복할 수 있는 인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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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용
천안·아산 독자위원
(농업환경운동가)

지난해 초겨울 경상북도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삽시간에 전국에 퍼져 350만 마리의 가축과 수백 억원에 달하는 국가 예산을 집어 삼켰다. 천안·아산에서만 13만여 마리의 가축이 땅에 묻혔다.

“아직도 땅에 묻힌 소, 돼지가 울부짖는 꿈을 꾼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이웃을 자주 만난다. 남들은 하늘의 재앙이라고 하지만 인재에 가깝다. 평생 동안 친환경농업을 해 온 필자는 “나를 넓은 초원으로 보내달라”는 가축들의 외침을 듣는다. “녹색의 야생초를 실컷 뜯어 먹게 목사리를 풀어 달라”는 애원이 들리는 듯하다.

대부분의 축산농가가 비좁은 축사에서 고삐를 양쪽 다잡아 매놓고 풀 한 포기 주지 않고 사료로 살을 찌워 가축들을 내다 판지 수 십 년이다. 조류독감도 마찬가지다. 닭장에 가두어 놓고 날개 짓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감옥에 갇혀 살다가 죽어간 닭, 오리. 잠을 자야 할 시간에 불을 환히 밝혀놓고 시도 때도 없이 알 낳기를 강요하지 않았나. 운동 한번 시키지 않고 살찌우는 데만 급급해 하지 않았나.

 네발 달린 짐승의 발톱은 마음껏 뛰어 놀다 보면 자연적으로 닳아서 없어지게 되어 있는데도 사람들은 자란 발톱을 강제로 깎아 주고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한양 착각하고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올해는 구제역이 없기를 소망한다면 이 또한 착각이라 할 수 있다.

 자유롭게 산중에서 뛰어 놀며 야생초를 뜯어 먹고 살아가는 돼지, 고라니, 염소 등이 구제역에 걸렸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했다. 인간이 짐승에 대한 박대가 이토록 무서운 재앙으로 돌아 온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 아닐까.

 농가에서는 이제라도 가축들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금이라도 야생초가 사라지기 전에 풀 맛을 보여주어야 한다. 시베리아 벌판을 뛰노는 순록들이 산야초만 먹어도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방역당국을 원망하지 마라. 자연의 순리를 역행해서 발생한 문제다. ‘꽃 돼지’ ‘우리 한우’ ‘황금 알’ 그런 말로 소비자를 현혹하지 말고 ‘야생초’ ‘건초’ 라는 ‘보약’을 먹고 자란 가축이라고 선전하라.

 우리 조상들이 그랬듯이 마구간에 야생초를 차곡차곡 쌓아두어 질 좋은 사료를 확보한다면 면역성이 향상돼 올 겨울엔 구제역을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필자가 어렸을 때 부모님들은 “소가 독감에 걸렸다”고 말하셨다.

 그럴 때마다 영양가 있는 소죽을 가마솥에 끓여 따뜻하게 먹이면 곧 낫곤 했다. 그 소는 필자가 어렸을 때 들판에 끌고 나가 사료대신 야생초를 마음껏 뜯어 먹여 키운 ‘워낭’이었다.

 구제역은 가축이 걸리는 독감이다. 조상들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백신주사에만 의존하지 말고 형편이 허락하는 한 기르고 있는 가축에게 야생초를 먹이기 위해 노력한다면 지난해 같은 구제역은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 올 겨울은 축산농가들이 자식처럼 귀하게 키운 가축들이 울부짖는 악몽을 꾸지 않고 넘기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광용 천안·아산 독자위원(농업환경운동가)

이광용(57)씨는 전직 아산시청 공무원으로 11년 전 퇴직 후 아산시 영인면에서 조상들이 농사짓던 방식 그대로 땅을 일구고 가축을 키우고 있는 친환경농업운동가이고 중앙일보 천안·아산 독자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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