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400명 넘게 이용하는 주민 정보·문화나눔 공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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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거도서관에서 진행 중인 ‘엄마와 함께 살아있는 글쓰기’강좌에 참가한 수강생들이 자신만의 ‘미니시집’을 꾸미고 있다. [조영회 기자]

천안 성거도서관이 마을 주민들의 정보와 문화나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1998년 개관한 이곳은 184석 규모의 일반 열람실과 아동 열람실, 종합자료실 등의 다채로운 공간이 마련돼 있으며 일 평균 400여 명이 드나들고 있다. 16일 학부모 강좌가 열린 성거도서관을 다녀왔다.

조영민 기자

시 쓰고 손수 꾸민다

이날 오전 10시30분 성거도서관 2층 강의실에서는 ‘엄마가 함께하는 살아 있는 글쓰기’ 강좌가 열렸다. 아마추어 작가 추경미(43·여)강사가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초등학교 자녀를 둔 부모를 대상으로 이달 초부터 시작됐다.

“이번 시간은 자신과 자녀가 쓴 시 2편을 작은 책자로 만들어 꾸미는 시간입니다. 책자가 완성되면 각 가정에 장식품으로 활용해 주세요.”

추 강사의 설명이 끝나자 20여 명의 주부(수강생)들은 저마다 여러 재료를 이용해 책자를 만드는데 여념이 없다. 4절 도화지를 반으로 접은 뒤 색종이와 파스텔 등으로 데코레이션을 하니 아기자기한 책자가 만들어 졌다. 책자에 자신이 직접 쓴 시와 자녀의 시를 클립으로 고정시키니 금새 자신만의 ‘미니 시집’이 완성됐다.

“시를 쓴 뒤 노트에만 담아두면 단순한 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정성을 쏟아 꾸며주면 장식용으로 쓸 수 있고 자녀들의 사고력도 키워주게 됩니다. 클립으로 고정돼 있는 시를 한 달에 한 번 교체해 주세요.”

추 강사는 수강생들이 제작한 미니 시집의 긍정적인 효과를 설명하며 수업을 이어갔다. 2시간 가량 진행된 수업이 끝나자 수강생들은 올바른 자녀 교육법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도 가졌다.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 두 딸을 둔 이진희(39)씨는 “아이들이 시를 좋아하는데 잘 알려주지 못해 안타까웠다”며 “이곳에서 이뤄지는 수업은 거의 동시이기 때문에 자녀교육에 도움도 되고 글쓰기에 자신감도 생겼다”고 뿌듯해 했다. 5학년과 1학년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정해정(40)씨는 “예전에는 도서관을 책을 읽고 빌리는 곳으로만 생각했다”며 “자기계발에도 도움이 되지만 자녀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니 더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에게 도서관 이용을 생활화하기 위해 펼쳐지고 있는 하반기 문화강좌는 이 수업 이외에도 ‘그림책 읽어주세요’, ‘이주여성 한글교실’, ‘KT 올레서포터즈와 함께하는 IT교육’ 등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하반기 강좌 문의=041-521-2817

도서관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 ‘보물섬을 찾아서’의 일부분. [조영회 기자]

 “도서관에서 고향의 그리움 잊어요”

“IT 수업시간이 너무 재미있어요. 가능하면 취미로 즐기는 데 머물지 않고 한국에서 취직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5일 성거도서관에서 만난 중국 출신 원영아(여·29)씨의 표정은 밝았다. 한국에 온 지 3년 됐다는 원씨는 “중국에서는 IT교육을 접해 보지 못했다”며 “타지에서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도 만나고 새로운 기술도 익혀 좋다”고 말했다.

성거도서관이 후원하고 ‘KT올레 서포터즈 충남팀’이 결혼 이주 여성들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는 IT 교육은 20여 명의 결혼 이주 여성들을 대상으로 11월 중순까지 매주 수요일 2시간씩 실시된다. 또한 서포터즈에서 보유 중인 노트북PC 11대, 이동용 빔 프로젝트를 제공하는 등 전액무료로 진행되고 있다.

서포터즈 안계환 팀장은 “교육에 참석한 몇몇 여성들은 처음으로 노트북을 사용한다며 좋아하고 신기해한다.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 너무 행복하고 뿌듯하다”라고 말했다.

캄보디아에서 온 홍라띠(24·여). 그에게 성거도서관은 특별하다. 그는 1년 전 남편을 따라 천안으로 와 가정을 꾸렸다. 언어가 통하지 않고, 문화가 전혀 다른 나라에서 생활해 나가기란 쉽지 않았다. 홍라띠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 외출을 꺼려했었다”며 “그러다 보니 외로움은 더 커졌고 고국이 사무치게 그리웠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거읍 사무소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매주 목요일 성거도서관에서 한글교육을 배워보지 않겠냐는 정희숙 다문화가족 담당 의 제안이었다. 그 후 홍라띠에겐 삶의 변화가 찾아왔다. 어눌하지만 자국어 대신 한국어로 표현하려 애썼다. 냉장고, 장롱 등 모든 집기류에 한글 단어도 붙여놨다. 세달 정도 지나자 일반인과 소통이 될 만큼 실력을 키웠다. 홍라띠는 “이곳에서 언어를 배운 뒤 한국생활에 자신감이 생겼다”며 “앞으로 태어날 아기에게도 한국어를 잘 알려줄 수 있도록 많이 배우고 싶다”고 열정을 보였다. 홍라띠는 현재 KT올레 서포터즈 충남 팀이 교육하고 있는 IT수업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문화 콘텐트

일요일이면 이곳은 영화를 보러 온 주민들로 북적인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마을 주민들을 위해 성거도서관이 마련한 ‘일요 시네마’ 프로그램 덕분이다. 상영되는 영화는 모두 전체관람가다. 10월 2일 ‘팅커벨’을 시작으로 ‘가필드’, ‘월레스와 그로밋’ 등이 이어진다. <표 참조>

도서관 담장에 그려진 벽화도 색다른 볼거리다. 성거읍에 위치한 충남예술고등학교(교장 유순식) 벽화동아리 학생들의 참여로 그려진 이 벽화는 길이 40m, 높이 1.7m의 크기로 제작됐다. 학생 50여 명이 주제 선정부터 밑그림, 채색 등 전과정을 작업해 지난 6월 완성했다. 벽화의 이름은 ‘보물섬을 찾아서’이며 우리가 찾은 보물은 ‘책’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성거포도, 천안호두과자 등 대표적인 지역특산물도 그려 넣어 지역의 자연적 요소도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성거도서관 관계자는 “천안 외곽지역이다 보니 문화적으로 소외된 주민들이 많다”며 “성거도서관이 지역의 ‘문화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온 가족이 도서관에서 놀다 보면 책과도 가까워지고 정도 돈독해지니 많은 이용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움직이는 도서관도 인기 만점

지역 곳곳을 누비는 ‘움직이는 도서관’

성거도서관이 시민들의 독서편의를 위해 제공하는 이동도서관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현재 이동도서관은 읍·면 지역 34곳, 동 지역 71곳 등 총 105곳이다. 운영 일자는 월요일~금요일이다. 또 성거도서관에서 통합 운영하던 기존 방식에서 권역별로 4개 도서관이 분산 관리하도록 했다.

현재는 ▶성거도서관 서북부지역 26곳 ▶쌍용도서관 쌍용·신방지역 26곳 ▶두정도서관 두정·성정·백석 지역 25곳 ▶아우내도서관 목천·청수·용곡 지역 25곳을 담당한다.

 이동도서관 이용객이 버스를 놓쳐 책을 반납하지 못할 경우 가까운 도서관에 반납하면 된다. 또한 전용버스 4대(35인승)에 각 3000권의 도서를 비치해 운영하고 있으며 1일 3권까지 빌릴 수 있다.

성거도서관 관계자는 “책을 좋아하지만 시간 등의 여유가 없는 주민들이 ‘움직이는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고 있다”며 “추후 버스의 배차 간격을 줄이고 움직이는 도서관 내에서 펼칠 수 있는 행사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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