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일본인이 소식주의자라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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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현기
도쿄 특파원

일본에 특파원으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돼 회사 근처 라면집에 갔을 때의 일이다. 원형으로 둘러앉게 돼 있는 20석 내외의 라면집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라면을 거의 다 비울 즈음이 되니 손님마다 ‘가에다마’란 말을 외치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열에 일곱 정도는 어김없었다. 가에다마(替え玉)란 단어는 ‘가짜’ 혹은 ‘대리’를 뜻하는 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가 싶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가에다마’는 속어로 ‘면(麵) 추가’란 뜻이었다. 처음부터 곱빼기로 시키면 면이 불 수 있으니 일단 라면 사리를 다 먹고 국물을 좀 남긴 상태에서 막 삶은 사리를 추가로 주문하는 것이었다. “일본인은 소식(小食)주의자”란 내 선입견이 틀렸다는 걸 그 라면집에서 여지없이 목격하고 말았다.

 ‘일본은 …’이라는 식으로 한국에서 오해하고 있었던 또 하나는 “일본은 휴일이 적다”는 것이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한 ‘빨간 날(공휴일)’만 따지면 한국(14일)과 일본(15일)은 거의 같다. 하지만 일본은 법정 공휴일이 주말과 겹치는 경우 이어지는 월요일을 쉰다. 이름하여 ‘해피 먼데이’. 또 휴일 사이에 끼여 있는 징검다리 평일은 휴일로 하도록 제도화돼 있다. 그뿐 아니라 빨간 날이나 공휴일이 아니어도 쉬는 날이 1년에 열흘은 된다. “일본이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우리도 휴일을 늘려선 안 된다”는 한국 관료들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임을 일본에 와서 처음 알았다.

 ‘많이 노는’ 데 놀란 것보다 더 놀란 것은 그들의 근무 집중도다. 근무시간 중 사적 휴대전화는 받지도, 걸지도 않는다. 업무가 생기면 사적 약속은 즉각 취소한다. ‘도타캰(막바지를 뜻하는 도탄바(土壇場)에 cancel을 더한 조어)’이란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그러니 한국의 전력거래소 이사장이 예비전력의 마지노선이 무너져도 유유히 ‘선배들’과의 점심약속에 나가고, 단전을 실시하는 순간에도 한가롭게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는 건 일본에선 해외토픽감이다. 3·11 동일본 대지진 발생 당시 도쿄전력의 회장과 사장이 ‘업무 출장’으로 동시에 도쿄를 비우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맹비난받는 게 일본이다.

 반면에 “역시 일본은…”이라 되새김하게 되는 점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혼네(本根·속마음)와 다테마에(建前·겉 표현)가 다르다는 것이다. "모시와케 고자이마셍(대단히 죄송합니다)”을 반복하는 건 진짜 죄송해서가 아니다. “됐다. 이제 고만 해라”는 뜻이 강하다. 요즘 자주 들리는 “일본 기업은 한국에 추월당했다”는 일본 재계와 언론의 ‘한국 치켜세우기’는 “한국 두고 보자. 모두 뭉쳐라”는 반격 개시의 사인이다. 실제 지금도 막후에선 이제껏 볼 수 없던 합종연횡과 기업 체질개선에 일본 정부와 기업이 이를 악물고 있다.

 그런데도 요즘 일본에 오는 한국 정치인이나 기업인마다 “일본은 이제 갔다”고 하니, 이는 일본에 대한 가장 큰 오해인 듯하다. 오히려 전 세계 자금이 엔화로 몰리고, 사상 유례 없는 엔고에 일본 기업이 엄살을 피우면서도 끄떡없이 버티는 게 뭘 의미하는지 곰곰 생각해 볼 때다.

김현기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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