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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문창극 칼럼

북쪽 땅끝을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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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문창극
대기자

나에게는 조그만 꿈이 있었다. 우리 땅 끝자락을 내 발로 걸어보는 것이었다. 남쪽 끝자락인 땅끝마을은 걸어보았다. 다음, 서해의 압록강에서부터 동해의 두만강까지 북쪽의 끝자락도 내 몸으로 체험하고 싶었다. 현실적으로 북한 땅엔 들어갈 수 없으므로 기회가 된다면 북한과 마주보는 중국 접경지대를 도보로 여행하겠다는 작정을 하고 있었다. 마침 꿈을 부분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중앙일보 취재팀이 북·중 국경선에 대한 취재를 간다기에 일행에 합류했다. 나의 관심은 황금평과 나진지구였다. 지난 6월 북한과 중국은 단둥~신의주 사이에 있는 삼각주인 황금평을 개발하기로 테이프를 끊었고, 나진항 개발에 중국이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100일이 지난 지금 얼마나 진척이 됐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두만강 하구는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북한 땅이 맞닿는 곳이다. 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중국의 방천이다. 북한의 두만강역, 러시아의 하산역이 코앞에 보이고 멀리 동해가 보인다. 시베리아 철도로 연결되는 두만강 철교는 지난번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 때도 이용되었다. 지금도 북한 벌목공들이 드나드는 곳이다. 바다까지 불과 12㎞. 중국은 이곳에서 막혀 동해로 진출할 수 없다. 바다가 열리면 중국은 동북지역의 석탄 등 자원을 상하이 등으로 실어나를 수 있고 군사적으로도 동해로 진출할 수 있다. 그래서 중국은 나진항이 필요했다. 훈춘의 권하 세관은 나진으로 향하는 관문이다. 여기서 50여㎞ 떨어진 나진까지 도로 포장이 한창이었다. 중국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중국 쪽 세관에는 20여 대의 트럭이 도로 공사용 자재와 생필품을 싣고 통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맞은편 북한 세관에는 “위대한 김정일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지도부를 목숨으로 사수한다”는 붉은 글씨가 걸려 있었다. 인근의 투먼, 사타자 등 북한과 도로나 철도가 연결된 세관지역을 보았지만 오가는 차량은 거의 없었다. 다리는 낡고 도로는 비포장이었다. 국경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교류는 동네장사 수준이었다. 팔 것도, 수입할 능력도 없는 북한은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고 있었다.

 황금평을 보기 위해 선양으로 가는 밤 비행기를 탔다. 반들반들한 새 비행기에 좌석은 만석이었다. 두만강 끝 훈춘, 압록강 끝 단둥까지 연결된 고속도로망도 놀랍다. 단둥과 신의주는 압록강을 사이에 둔 쌍둥이 도시. 단둥은 불과 20여 년 만에 현대 도시로 면모가 일신된 반면 신의주는 일제 때 사진 그대로인 퇴락한 모습이었다. 황금평은 누런 갈대 밭이라 하여 본래 황초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철조망 하나로 단둥 특수경제구 바로 옆에 붙어 있다. 바로 옆 중국땅에는 수십 층의 고층아파트와 화려한 건축물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 황금평에서는 지금도 북한주민들이 남루한 옷 차림으로 갈대를 베고 있었다. 이것이 북한의 현실이었다. 국경지대를 돌아보면서 여러 상념들이 떠올랐다. 저들은 중국의 발전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저런 형편인데도 북한은 무슨 힘으로 버티고 있는 것일까. 저들에게는 왜 변화의 갈망이 없는 것일까. 남루한 북한 주민들의 힘겨운 몸짓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는 안타까움이 끓어올랐다. 조용하기만 한 이 국경선을 넘어 변화의 바람이 들어가야 한다는 소망 또한 솟구쳤다.

 북·중 국경은 신의주에서 부산 거리보다 길다. 중국으로서는 그런 이웃이 적대적인 관계가 되도록 방치할 수가 없을 것이다. 중국은 북한이 붕괴되지 않을 정도의 군사적·경제적인 지원을 계속할 것이다. 우리의 통일에 중국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는 점도 절감할 수 있었다. 나진항 개발은 소규모일 수밖에 없고, 황금평은 아직 갈대밭뿐이었다. 북한이 아직 개방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심 경제적으로 중국에 흡수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은 아닐까, 그럴 경우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 어쨌든 북한을 우리의 경제권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한반도는 중국·러시아와 붙어 있다. 이 나라들의 협조 없이는 북핵 해결도, 한반도의 안정도 불가능하다. 한·미 동맹을 든든히 하면서 북방외교에도 힘을 써야 한다. 이들 나라를 현실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 살얼음판이었다. 내가 귀국한 그 시간, 두만강 상류를 취재하던 일행이 중국 국경수비대에 억류됐다는 소식이 왔다. 다행히 풀려나긴 했지만 이 국경지대는 아직 한국인이 활동하기에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만큼 우리와 중국은 아직 거리가 있다. 중국은 우리 같은 개방사회가 아니었다. 나의 소박한 도보여행의 꿈도 아직은 시기상조임을 확인했다.

문창극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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