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검찰에 불려가는 청와대 참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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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박정희 대통령의 9년2개월 비서실장 김정렴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최장수 비서실장일 것이다. 비서실장(1969년 10월~78년 12월)으로 한국의 권력사(史)에 이름을 올린 이후 지금까지 42년 동안 김정렴은 한 번도 비리(非理) 구설에 오른 적이 없다. 절대권력자의 최측근이 절대적으로 청렴했던 것이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되자 상공장관 시절 국회 상임위에서 나를 도와주었던 국회의원 몇 사람이 축하 술자리를 마련해 주었어요. 별 생각 없이 흔쾌히 응했지요. 그런데 그 후 어떻게 알았는지 이곳저곳에서 ‘축하해 주겠다’는 제의가 들어오더라고요.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한두 번 더 응했다가는 내내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어요. 전부 사양했습니다. 얼마 동안 ‘섭섭하다’‘높은 데 가더니 사람 변했다’는 얘기가 들렸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다 이해하더군요.”

 이때부터 김정렴의 탈속(脫俗)이 시작되었다. 저녁 6시쯤 별다른 일정이 없어 박 대통령이 관저 2층으로 퇴근하면 김 실장도 집으로 향했다. 다른 고관들은 호텔이나 요정에서 술자리를 즐겼지만 그는 저녁상에서 아내의 반주(飯酒)로 달래야 했다. 그는 낮에도 대개 청와대 본관에서 보좌관과 함께 칼국수로 점심을 때웠다. 그는 “각하가 칼국수를 드시는데 우리가 다른 것을 먹을 수는 없다”고 했다고 한다.

 수많은 감투 중에서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나 수석비서관은 ‘특별한 공직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말 그대로 대통령의 뇌와 심장·다리를 나눠 갖는 분신(分身)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언행이 대통령의 언행이 되고 정권의 그림이 된다. 특별한 공직이기 때문에 대통령 참모가 되는 순간 ‘특별한 인생’을 살겠다는 각오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 각오와 실행이 없으면 정권은 대개 무너지고 만다.

 김영삼 대통령의 최측근 홍인길 총무수석은 한보그룹 로비라는 덫에 걸려들었다. 그는 자신이 몸통이 아니라 깃털이라고 했으나 깃털만으로도 정권에 준 충격은 엄청났다. 김대중 정권에서는 한광옥 비서실장이 2000년 공관에서 나라종합금융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아 나중에 유죄판결을 받았다. 퇴출 위기에 몰린 금융회사의 청탁을 받은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박정규 민정수석은 현직에 있을 때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1억원어치 상품권을 받았다. 그는 다음 정권 때 감옥에 갔다.

 미국에서는 신랑·신부가 특정 백화점이나 상점에 원하는 결혼선물의 목록을 등록해 놓는다. 그러면 친지들이 이를 검색해 선물을 산다. 2002년 6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애리 플라이셔 대변인은 41세 노총각을 면하는 결혼식을 앞두고 선물을 등록했다. 접시와 테니스 공 그리고 오드리 헵번의 ‘사브리나’ DVD, 야외용 쿨러… 그가 서민 백화점에 등록한 목록은 대개 10~20달러면 살 수 있는 것이었다. 플라이셔의 재산은 20만 달러(2억4000만원)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통령 참모가 가난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일단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나 수석 비서관이 되면 부자라도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살기가 팍팍한 서민에게 정권이 할 말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청와대에 들어가면 사람이 달라져야 한다. 친척·고향친구·선후배라는 세속의 인연을 ‘대기 모드(mode)’로 돌리는 것이다. 그러고는 외롭고 독하게 ‘권력의 산사(山寺)’로 들어가야 한다. 사람을 만나도 정권을 위해서만 만나야 한다. 그게 청와대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에 이어 이명박 청와대에서도 대통령 측근들이 무너지고 있다. 그들이 검찰에 소환되는 모습에서 역사의 악마 같은 반복을 본다. 지금 많은 이가 1년5개월 뒤에 청와대에 들어가려고 작심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번 겨울에 산사에 들어가 동안거(冬安居)라도 해보면 어떨까. 정권의 성공에 매진하려면 ‘지난날의 나’와 어떻게 절연할 것인가… 죽비를 맞으며 이 어려운 화두와 씨름해 보면 어떨까.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