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연의 매력 발전소] 더 나은 한국 만들 ‘소수’, 그들은 어디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4면

백지연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A small group of thoughtful people could change the world. Indeed, it’s the only thing that ever has.”

 평생을 인류에 대한 열정으로 산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의 말이다. 소소한 해석의 차이에 따라 깊은 뜻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에 영문 그대로 인용한다. ‘헌신적 소수가 세상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믿고 있지만 이 문장을 들여다보면서 갑자기 과연 누가 ‘thoughtful’한 사람들인가, 어떤 가치관과 사고가 ‘thoughtful’한 것인가 질문하게 된다. 요즘처럼 갈등이 극명하게 표면화되는 세상에서는 ‘thoughtful’이란 단어 하나만 두고도 저마다 제각각의 아전인수 격 해석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루가 멀다 하고 말싸움을 쏟아내는 각 정당, 정치세력들의 경우 저마다 우리가 바로 그 ‘thoughtful’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라고 주장하지 않을까. 혹자는 내가 바로 그 소수의 그룹을 이끌 리더라고 굳게 믿고 나설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착각과 오판에서 나선 사람들이 아닌, 미드가 뜻한 그대로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는 ‘소수의 그들’을 만나보고 싶다.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아이비리그 총장이 된 다트머스대 김용 총장은 미드의 그 말을 인용하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국제기구마저 아프리카의 절망적 기아와 질병에 대해 몇몇이 애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며 회의적이었죠. 그러나 저와 저의 몇몇 친구는 적더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제대로 된 ‘소수’의 힘을 보여주듯 하버드대 의대 친구들과 아프리카에서 에이즈·결핵과 맞서 싸웠고 가시적 성과를 거두어 국제기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미드의 이 말을 가슴에 새긴다는 사람은 또 있다(더 많겠지만). 미국 실리콘밸리 최대의 벤처캐피털 KPCB의 파트너 존 도어. 그 또한 자신이 가장 감동받은 명언에 미드의 말을 게재해 놓고 있다. 그를 개인적으로 인터뷰해 본 적이 없어 그의 선언과 행동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그가 지구온난화 방지와 빈곤퇴치, 미래를 위한 교육 개혁에 앞장선다는 자료가 수두룩한 것을 보면 그는 나름의 방법으로 미드의 말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 아닐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그를 ‘가장 존경하는 사업가 중 한 명’이라고 소개하곤 한다.

 김용 총장은 총장 직과 오바마 행정부 입각 기회가 동시에 왔을 때 총장 직을 선택한 것에 대해 이런 이유를 댔다. “나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보다, 수만 명을 교육시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다수를 만들어 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생각했죠. 상대적으로 혜택받은 사람들이 지구의 어디로 가서든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균형’이기 때문이죠.” 그는 그 스스로 정치권으로 들어가 보건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것보다 건전한 가치관과 능력 있는 학생을 많이 키워내는 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더 빠른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트머스대 김용 총장.


 지난달 다트머스대를 찾아가 다시 인터뷰할 때 그는 그동안 학교 재정을 튼튼히 하는 일에 정신없었다고 설명하면서도 최근 열중하고 있는 ‘binge drinking(과음)’ 추방 캠페인에 대해 힘주어 설명했다. ‘미국 아이비리그에 부는 ‘과음과의 전쟁이라’… 우리 대학가에서 신학기마다 심심찮게 들려오는 학생들의 과음 사고를 떠올리고 있을 때 그는 논문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 뇌의 중요한 부분은 24세까지도 발달하는데 이때 과음하게 되면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될 뿐만 아니라 명석한 학생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며 때로는 새벽녘에 ‘지금쯤 어디서 우리 학생들이 술을 마시고 혹여…’ 하는 걱정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의 생활 안까지 이미 깊이 들어가 있는 듯했다.

 무엇이 진정 더 많은 사람의 권익을 위해 ‘thoughtful’한 것인지, 누가 과연 ‘thoughtful’한 사람인지는 누구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의 속과 겉이 진정 같은지 검증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할 수 있고, 특정 정책이 옳은 방향인지 또한 시간의 흐름이 있어야 나타나기 때문이다. 위에서 예로 든 두 인물이 바로 ‘그들이다’라고 얘기할 수도 없다. 그들에 대한 검증 또한 시간이 더 지나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시끄럽겠구나 했더니만 10월로 정치의 계절이 앞당겨졌다. 경험칙상 기대보다는 머리가 먼저 지끈거림으로 반응한다. 우리에게도 분명 대한민국을 더 낫게 만들 ‘small group of thoughtful people’이 있을 텐데 말이다.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백지연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