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종차별에 정면으로 맞섰던 46년 전 비틀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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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1964년 2월 9일 미국 데뷔를 위해 CBS 버라이어티쇼인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한 비틀스. 비틀스는 흑인과 백인 좌석을 격리한 미국의 공연 방식에 반발, 인종을 차별하는 공연 무대에는 서지 않겠다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왼쪽부터 링고 스타(드럼), 조지 해리슨(리드 기타), 에드 설리번, 존 레넌(기타), 폴 매카트니(베이스). [중앙포토]

“우리는 백인과 흑인이 격리된 공연장에서 연주할 수 없다.”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비틀스가 1965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데일리시티의 카우팰리스 공연을 앞두고 주최 측과 체결한 계약서가 22일 경매에 부쳐졌다. LA 네이트샌더스 경매장에 출품된 계약서는 비틀스의 제5의 멤버로 불리던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같은 해 3월 서명한 것으로, 예상가(5000달러)를 크게 웃도는 2만3000달러(약 2700만원)에 낙찰됐다.

 당시 비틀스는 히트곡 ‘헬프!’를 발매하고 세 번째 미국 투어를 앞두고 있었다. 계약서 부속조항에는 “청중의 인종을 차별하는 무대에서는 공연을 하지 않겠다”는 비틀스 측의 강력한 입장이 표현돼 있다. 백인과 흑인 좌석을 분리해 인종을 차별할 경우 공연을 취소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6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비틀스는 당시 정치적으로 매우 예민했던 인종차별에 강하게 반대했다.

 비틀스는 앞서 64년 첫 미국 투어 당시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 열린 공연에서 관중들의 좌석이 흑백 인종별로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공연을 거부했다.

당시 미국 측 공연 관계자들은 관중석을 평등하게 재배치했고, 비틀스는 그제서야 무대에 올랐다. 비틀스는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사태를 사전에 막기 위해 그 이후로는 아예 계약서에 ‘인종차별 금지’ 조항을 내걸었다.

 이밖에 ▶드럼 연주자인 링고 스타를 위한 별도의 드럼 설치대를 마련할 것 ▶경호를 위해 최소한 150명의 경찰관을 배치할 것 ▶티켓 판매 총액(7만7000달러) 중 4만 달러를 출연료로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개인적 요구사항은 매우 검소했다. 이들은 차량에 물과 전기를 공급해줄 것과 숙소에 4개의 이동식 침대와 거울·아이스박스·이동식 TV 제공을 요구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는 당시 톱스타들의 요구사항에 비해 매우 검소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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