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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저축은행 감독시스템 근본 수술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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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7개 저축은행들이 영업정지 당한 것도 부산저축은행 때처럼 불법과 탈법 행각 때문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공시지가 12억원짜리 땅을 담보로 978억원의 대출을 해줬고, 자기자본이 1000억원도 안 되는 저축은행이 두 건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6400억원을 빌려줬다. 한도 초과 대출에 차명 대출, 불법 서류 작성과 금품수수가 공공연했다고 한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으니 더 많은 불법과 탈법이 드러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봐도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금융인으로서 기본도 갖추지 않은 대주주와 경영진이 국민 돈으로 사기 행각을 벌인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도 금융감독시스템은 이를 파악하지도, 제재하지도 못했다. 단적인 예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다. 업계 2위인 토마토저축은행의 BIS 비율은 얼마 전까지 8.62%였다. 8%면 우량은행이다. 그러니 저금하거나 후순위채권을 사면서 이 은행이 망할 것이라고 생각한 국민은 없었을 것이다. 이 은행을 감사한 회계법인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금융감독원 검사에서는 마이너스 11.47%로 드러났고, 그래서 영업정지됐다. 엉터리로 검사한 건 금융감독당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은 예금보험공사와 공동으로 파랑새저축은행 등 5개 저축은행을 검사했다. 이 중에서 파랑새만 유일하게 문제가 없다고 진단했지만 이번에 영업정지됐다. 금융감독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증거다. 대주주와 경영진의 불법과 탈법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이 몽땅 망가지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축은행 감시시스템은 크게 네 곳으로 구성돼 있다. 외부의 금융감독당국과 회계법인, 내부의 사외이사와 감사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제대로 기능한 곳이 한 곳도 없다. 사외이사는 이사회에 올라오는 모든 안건에 찬성했다. 거수기 역할만 했으니 경영진의 과도한 대출, 불법 대출을 막을 수 없었다. 금융감독원 출신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감사들 역시 대주주와 경영진의 불법 행위를 감독하기는커녕, 오히려 금융감독당국의 검사를 막는 바람막이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내부에서 못하면 외부에서라도 해줘야 하는데, 금융감독당국과 회계법인도 제 역할을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애꿎은 국민들만 속절없이 피해를 본 것이다. 이들이 평생 모은 돈을 다 날리게 생겼다는 노부부의 절규를 조금이라도 귀담아 들었다면 이토록 무심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를 개선하려면 제도를 바꿔야 한다. 차제에 감시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주주와 경영진의 불법 행위에는 보다 엄중하게 연대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경영진 편들기 행태가 조금이라도 개선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