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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안철수, ‘멘토’인가 ‘정치인’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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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

‘호산나’라고 외치는 대중의 환호 소리가 요란하다. 어찌 그뿐인가. “왕이 되소서”라는 함성까지 들린다. 안철수, 그는 이미 왕이다. 만지는 것마다 모든 걸 금으로 만든 미다스 왕이다. 서울시장 후보를 한번 껴안으니 단숨에 그의 지지율이 올라갔다. 4년 동안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유력한 대권 후보와도 겨루고 있는 중이다.

 너무나 놀랍기에 이런 생각이 든다. 그는 예언자인가, 멘토인가, 아니면 정치인인가. 전통적으로 예언자는 낙타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서 외쳤다. 그가 쏟아내는 메시지는 간결하지만 가히 위협적이다. “회개하라. 그러지 않으면 재앙이 닥칠 것이다.” 안 교수는 낙타털옷을 입진 않았지만 예언자적 담론을 쏟아냈다. 역사가 거꾸로 갈 수도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그에겐 또 소크라테스와 같은 면모가 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88만원 세대’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영감을 주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확장성도 안 되고 민주당에 혜택이 돌아가서도 안 된다며 현장정치를 말하는 정치인의 모습도 있다. 그가 여론에 등장하는 순간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무릎을 꿇었다.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 스님의 인기를 부러워하지 않는 정치인들이 유독 안 교수의 인기를 시샘하는 것은 ‘그의 인기라면 대권도 잡을 수 있을 텐데’라는 부러움 때문일 것이다.

 이런 안 교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정치인이 되고 싶으면 정치무대로 나서고 예언자가 되고 싶으면 예언을 하라. 또 소크라테스처럼 살고 싶으면 아픈 청춘들을 위로하라. 그러나 경계선을 이리저리 넘나들지는 말라.

 만일 안 교수가 예언자로 살고 싶다면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특정한 누구를 위해 피리를 불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정치적 제스처는 접어야 한다. 이것은 분명 권력의 개념이고 ‘팔로우’를 의식한 보스의 모습이다. 한나라당에 희망이 없고 민주당에 대안이 없다는 말이 델포이 신전의 ‘신탁’과 같은 말은 아니다. 한나라당이 봉숭아학당 이상의 정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민주당이 ‘노’라는 말만 알 뿐 ‘예스’라는 말은 할 줄 모르는 정당이라는 것도 다 알고 있지 않나. 4년 내내 중도실용만 외쳐온 이 집권세력에 영혼과 철학이 없다는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의가 패배했으니 모든 게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좌파진보의 해묵은 로망일지언정, 젊은이들의 멘토로서 해줄 화두는 아니다.

 정작 그가 해야 할 말은 따로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동상이몽의 뜨내기들이 이럭저럭 삶을 꾸려가는 ‘난민촌’이 아니라 ‘노아의 방주’와 같았다는 말이다. 노아의 방주는 신의 노여움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실은 동물들이 짝을 이뤄 행복하게 삶을 꾸려간 공동체 이야기다. 분단과 전쟁은 신이 내린 벌과 같았으나, 우리는 난민처럼 살기를 거부하고 자유와 풍요의 방주를 만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면서 보다 따뜻하고 좀 더 정의로운 공동체, 용기와 희망, 규율이 살아 숨쉬는 방주를 만들어 가자고 호소해야 한다.

 물론 안 교수는 정치인의 길을 갈 수도 있다. 말로는 정치를 안 하겠다고 했지만, 노처녀가 시집가지 않겠다는 말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지난번에도 정치를 안 하겠다고 선언했으면 그만인데, 굳이 상대방을 껴안음으로써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것은 이미 정치인의 행위다. 그렇다면 자신의 잣대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이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라는 식으로 말을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자신의 편은 선이고 다른 편은 악이라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어차피 정치란 정파성을 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식이 아닌 자신의 특별한 이념과 소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자신의 지지자를 모으고 반대자를 설득해야 한다. 그런 것이 없으면 성공한 정치인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자기비전이 없는 것과 같다. 자신이 살아온 길이 올곧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상식적인 정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인선발대회에 나오는 미인처럼 좋은 이미지만 갖고 ‘착한 정치’를 할 수는 없다. 기성 정치를 거부한다면, 응징만 말할 것이 아니라 대안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밝혀야 한다.

 이제 선택은 안 교수의 몫이다. 그의 로망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부탁컨대, 제발 예언자, 젊은이의 멘토, 정치인, 이 모든 것을 다 하겠다고 하지 말라. 그건 정직하지 못한 태도이고 또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처신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