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열풍 너도나도 “나가수” … 전국 1100곳서 ‘보컬 사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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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역삼동에서 티원보컬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가수 이상우씨가 가수를 꿈꾸는 한 여학생의 노래 부르기를 지도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중학생 이모(14)양은 최근 학교 수업도 빼먹은 채 각종 기획사·방송사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결과는 연거푸 탈락이었다. 애가 탄 건 이양보다는 어머니(42) 쪽이었다. 어머니는 “딸을 가수로 키우고 싶다”며 이달 초 서울 강남의 한 실용음악학원을 찾았다. 이양은 학원의 진단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적 소질을 확인한 뒤 보컬 트레이너의 집중 지도를 받는 중이다.

 ‘보컬 사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슈퍼스타K(엠넷)’ ‘위대한 탄생(MBC)’ 등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이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다. 특히 10대 자녀를 둔 부모들의 관심이 급증했다. 서울 역삼동에서 티원보컬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가수 이상우(48)씨는 “과거와 달리 사교육을 통해서라도 아이를 가수로 키우려는 적극적 부모가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보컬 사교육이 뜨면서 노래하는 법을 훈련시키는 실용음악학원도 증가하는 추세다. 업계에선 전국적으로 1100여 개의 실용음악학원이 성업 중인 것으로 추산한다. 이 가운데 서울에 300여 곳, SM·JYP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기획사가 몰려 있는 강남 지역에만 100여 곳이 있는 것으로 업계는 파악하고 있다. 한 달 수강료는 20~30만원 선이다.

 보컬 사교육 열풍의 직접적 배경은 가수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화다. 최근 K팝이 유럽·북남미 등 세계 무대로 뻗어가면서 가수의 직업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과거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중심이었던 10대들의 장래 희망도 최근 가수로 쏠리는 분위기다. 어린이 포털 다음 키즈짱이 지난해 3월 전국 초등학생 1만478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1.6%(4346명)가 가수를 장래 희망으로 꼽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상우씨는“아이를 직접 학원으로 데려와 가수로서 자질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부모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오디션 열기도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전국 규모 오디션 프로그램만 해도 ‘슈퍼스타K3’ ‘위대한 탄생’ 두 개다. 특히 올해 전체 응시자 수가 200만 명에 이른 ‘슈퍼스타K’의 경우 가요계 입성의 속성 코스로 여겨진다. 또 SM·YG·JYP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기획사들은 상시적으로 오디션을 펼치는 중이다. 평균 8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연습생이 선발된다.

 이처럼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체계적 준비를 위해 실용음악학원의 문을 두드리는 이가 많다. 지난해 ‘슈퍼스타K2’에서 톱4에 올라 가수로 데뷔한 강승윤도 부산의 한 실용음악학원에서 전문적 트레이닝을 받으며 오디션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컬 사교육이 좀 더 직접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대학입시다. 입시의 한 방편으로 보컬 사교육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전국 대학의 실용음악학과가 늘어났다. 특히 한양대 등 주요 4년제 대학들도 적극적으로 실용음악 과정을 개설하는 중이다. 실용음악 전공이 설치된 4년제 대학의 경우 2008년 12개에서 2011년 22개로 두 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정원이 늘어났음에도 이들 대학의 경쟁률은 해마다 치솟는 중이다. 대학마다 평균 200대 1을 넘나들 정도다. 올 대입 수시모집 원서접수를 마감한 단국대 천안캠퍼스 생활음악과(보컬 전공)의 경우 3명 모집에 1534명이 몰려 51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상우씨는 “무턱대고 사교육부터 시킬 게 아니라 아이의 음악적 소질을 냉정하게 따져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 일부 학원의 경우 부모가 자녀의 음악적 소질을 확인할 수 있는 진단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음정·박자·성량 등 가수로서의 기본 역량을 사전에 알아볼 수 있다.

글=정강현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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