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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못 키운 외교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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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예영준
중앙SUNDAY 차장

외교관의 업무 영역 중에서도 가장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로 조약 및 국제법 업무를 들 수 있다. 모든 외교 행위는 ‘말’로 시작해 종국에는 ‘글’로 끝난다. 사안에 따라 그 글은 조약이나 협정과 같은 법 규범이 될 수도 있고, 공동성명이나 비공개 각서와 같은 다양한 형식의 외교문서가 될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자구 하나 하나 국제법적 견지에서 치밀하게 따져봐야 후환을 예방할 수 있다. 그래서 각국 외교부는 이런 업무를 전담하는 조약국을 중시한다. 일본 외무성의 경우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를 조약국장으로 뽑는다. 그러다 보니 조약국장 자리는 사무차관이나 주미 대사 등 요직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역대 조약국장 중에는 우리나라의 대법관에 해당하는 최고재판관으로 발탁된 사례도 있다.

 한국 외교 역시 국제법 업무를 소홀히 할 수 없긴 마찬가지다. 더구나 독도 문제를 포함한 영토 문제 또한 지난해 조약국에서 문패를 바꿔 단 국제법률국 소관이다. 그런데 최근 국제법률국장을 뽑는 과정에서 빚어진 혼선과 잡음을 보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그 과정을 요약하면 이렇다.

 가을 정기인사에서 네덜란드 대사로 자리를 옮긴 이기철 국장의 후임자로 모 공관의 부총영사로 근무하던 A씨가 내정됐다. 그는 부임 준비를 마치고 귀국했지만 인사검증에서 문제가 발견돼 국장석에 앉지 못했다. 업무와의 관련성은 없지만 고위 공무원이 되기엔 심각한 결격사유였다. 문제는 그 다음에 빚어졌다. 외시 19~23기의 인사카드를 샅샅이 훑었지만 국제법률국장이 될 만한 경력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모 대학 교수 등 외부인사 영입도 추진해 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러는 사이 근 한 달 동안 국장 자리는 공석이었다. 일본 자민당 의원 방한 사건 이후의 독도 문제 대책, 금강산 재산 몰수에 대한 법적 검토 등 굵직한 현안들은 실무자들이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외교부는 내부 공모를 거쳐 신맹호 부대변인을 임명했다. 문제는 신 국장뿐 아니라 전임 이 국장, 내정자였던 A씨 모두 국제법 분야에 단 한 차례도 근무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 외교부의 조약국 인맥이 완전히 끊어졌음을 의미한다. 그것도 특정 기수가 아니라 5개 기수에 걸쳐 물색을 해도 마땅한 인물이 없을 정도였으니 역대 인사정책에 큰 구멍이 있었다는 비난을 면키 힘들게 됐다.

 비슷한 일은 올 초 차관 인사에서도 벌어졌다. 대중국 외교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이른바 ‘중국통’을 차관으로 발탁하려다 적임자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여태껏 북미스쿨, 재팬스쿨 등 몇몇 분야에만 인재가 몰렸던 탓이다. 이런 식의 근시안적 인력 양성으로 ‘총력복합외교’를 펼칠 수 있을까. 얼마 전 김성환 외교장관이 출입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외교부의 현안들은 전문성이 강하다. 각 언론사들도 외교 담당 기자의 전문성을 키워주면 좋겠다.” 과연 외교 기자만 전문성이 높아진다고 우리 외교가 발전할까. 정작 외교 업무를 수행하는 외교관들의 전문성은 제자리걸음인데 말이다.

예영준 중앙SUNDAY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