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수퍼 리치 ‘수퍼 시크릿’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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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도 근심이 많다. 평범한 사람들처럼 그들도 대개 돈 걱정이다. 다만 없어서 걱정이 아니라, 가진 것을 어떻게 지킬지 고민한다. 프라이빗 뱅커(PB) 100명에게 요즘 부자들이 특히 신경 쓰는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금융자산만 10억원이 넘는 부자 약 3000명이 이들의 고객이다.

 그중 한명인 57세 윤모씨는 150억원 자산가다. 윤씨의 아들 내외가 얼마 전 그에게 은근히 던진 질문이 있다. “8월 이후 주가 급락에 무사하시냐”는 것이다. 속 모르는 소리다. 평가손이 났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2008년에 이미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크게 데였다. 그래서 이때 펀드를 정비, 주식 비중을 줄인 채권혼합형 펀드 등으로 바꿨다. 현재 -10% 안팎의 수익률이지만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한다.  
생각할수록 골이 아픈 건 따로 있다. 2007년 들어간 해외펀드와 2만 평 김포 땅이다. 그는 2007년 여름 해외펀드 열풍에 편승해 중국펀드와 글로벌스윙펀드에 각각 1억5000만원을 가입했다. 둘 다 원금 대비 25% 안팎의 손실을 보고 있다. 그나마 중국 펀드는 걱정이 덜하다. 중국 경제에 대한 낙관론이 여전하니 언젠가 한번은 뜰 것이라고 애써 위안한다. 하지만 글로벌스윙펀드는 가입한 뒤 곧바로 원금을 까먹기 시작하더니 4년째 그 모양이다. ‘깜깜이 펀드’란 별명대로 대책이 없어 보인다.

2009년 매입한 김포 땅은 돈 묶어두는 괴물이다. 가격 상승을 기대하고 샀지만 오르기는커녕 거래도 안 된다. 팔려고 내놓은 지 1년 넘었는데 전화 두 통 받은 게 전부다.

 PB들은 윤씨처럼 대부분 부자들이 단기간의 투자 손익보다는 해법과 대응책이 있느냐를 중시한다고 했다. 부자들은 시간과의 싸움에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몹시 어려운 숙제가 있다. 부를 다음 세대로 이전시키는 문제다.

63세 박모씨 가족은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박씨는 시가 100억원의 빌딩을 갖고 있었다. 이 빌딩은 그의 평생 꿈이었다. 자영업으로 종잣돈을 모아 10년간 대출 끼고 부동산 샀다가 되팔기를 다섯 번. 결국 목표를 이뤘다. 다른 재산은 강남의 시가 18억원짜리 대형 아파트가 전부.

 ‘100억 빌딩 오너’의 꿈을 이룬 지 석 달 만에 건강하던 박씨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가 사망하자 유가족에게 상속세 33억원이 부과됐다. 빌딩 매입 직후여서 신고된 거래가격이 있었고, 고스란히 시가 기준으로 세금이 나왔다. 박씨 가족은 상속에 아무 대비가 없었다. 강남 아파트를 내놓았지만 안 팔렸다. 발만 동동 구르다 세금 납부 기한 6개월을 넘겼고 빌딩은 압류돼 공매로 70억원에 팔렸다. 상속세, 빌딩 매입 시 쓴 은행 대출, 임대보증금을 제하니 유가족 손에는 15억원 남았다. 100억 빌딩이 순식간에 공중 분해된 것이다. 이 딱한 사정은 강남 부자들 사이에 빠르게 퍼졌다. 남 얘기 같지 않다는 반응과 함께. ‘준비된 투자’와 ‘준비된 상속’이 부자들의 화두인 세상이다.

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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