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105) 악당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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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일·황정순 주연의 영화 ‘속(續) 두 아들’(1971). 신성일은 전작 ‘두 아들’의 성공에 힘입어 후속편에서도 조문진 감독과 손잡았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용서될 수 있다. 1969년 ‘포옹’으로 데뷔한 조문진 감독은 혈기왕성했다. 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그는 같은 해 김동리 원작의 ‘까치소리’를 각색하며 김수용 감독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들어왔다. 조감독으로 여러 작품을 했기에 나도 그를 알고 있었다.

 나와 윤정희는 ‘포옹’의 남녀 주인공으로 조 감독과 호흡을 맞추었다. 그가 무언가 촬영을 요구했는데, 나는 모르는 체하고 현장을 떠나버렸다. 신인감독은 의욕이 넘쳐 이것, 저것 찍자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나는 더 촬영할 필요가 없는 장면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조문진 감독

 조 감독은 작품이 끝난 후 한 주간지에 ‘톱스타(신성일) 다루기도 힘들고, 건방져서 감독하기 힘들다’는 인터뷰를 했다. 기분이 나빴다. 속으로 ‘감독이면 다냐. 다시는 조 감독과 작품 안 한다. 만나면 패줄 거다’라고 생각했다.

 70년 어느 날 한 제작자가 ‘두 아들’ 시나리오를 들고 찾아왔다. 내 역할은 세상에 둘도 없는 불한당이었다. 사람 두들겨 패고, 부모 장롱 뒤져 돈 꺼내가고 등등. 형(최무룡)은 검사고, 내가 둘째 아들이었다. 완전한 연기 변신이 필요했다. 청춘물·멜로물만 해온 나로선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감독 조문진’이란 이름이 보였다. 감독이 먼저 작품 의도를 배우에게 밝히고 섭외를 하는 게 순서였으나 조 감독은 나와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직접 나서지 못했다.

 더 생각해 볼 게 없었다. 안 하기로 결심하고 평소 개런티의 두 배인 200만원을 불렀다. 다른 이유를 대면 구차해질 뿐이다. 그런데 뜻밖에 제작사가 개런티를 현찰로 가져왔다. 출연하지 않을 명분이 없었다. 어찌 보면 기회이기도 했다.

 서울 미아리 세트장 촬영 때, 나는 기선을 잡기로 했다. 조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이는 이상, 나도 완전 ‘막장’이었다. 어차피 불한당 역할 아닌가. 홀어머니(황정순)를 뿌리치고 장롱에서 돈을 꺼내가는 신이었다. 테스트 때는 세트로 지은 미닫이 문이 잘 열렸다. 막상 슛 들어갔을 때, 미닫이 문이 뻑뻑했고, 잘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발로 걷어차버렸더니, 문과 함께 세트가 통째로 넘어져 버렸다. ‘방귀 뀐 놈이 큰소리 친다’고, 나는 미술감독에게 “이걸 세트라고 만든 거요”라며 일부러 행패를 부렸다. 조 감독은 침묵하고, 미술부 사람만 동네북이 됐다.

 조 감독은 내가 나오는 장면에선 ‘레디 고’ ‘컷’ 딱 두 마디밖에 안 했다. 나는 거칠게 연기했다. 그러나 영화는 대성공이었다. 관객들은 내 악역 연기를 신선하게 보았다. 동생이 형과 애인에게 감명을 받아 새 인간으로 거듭나는 해피 엔딩도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그 뒤로 조 감독과 화해하고 무척 가까워졌다. 71년에는 ‘속(續) 두 아들’로 다시 뭉쳐 흥행에 성공했다.

 조 감독은 86년 ‘젊은 밤 후회 없다’에서 내 아들 석현이를 데뷔시켜 그 해 대종상 신인상 수상의 영광도 안겨주었다. 이상아도 석현이의 상대역으로 데뷔했다. 어제의 앙숙이 오늘의 은인이 된 셈이다.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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