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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 5, 6, 7차전 등판해 혼자 4승 … 우승 파티도 못 가고 쓰러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36호 08면

“행님, 미안하요.”
“괜찮다. 뭐 어때.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 해도 좋다.”
“오케이. 행님 굿.”

84년 한국시리즈, 최동원이 남긴 ‘불멸의 기록’

1984년 10월 9일 잠실구장. 롯데와 삼성의 한국시리즈 최종 7차전. 3-1로 리드한 삼성의 6회 말 공격에서 오대석이 최동원을 상대로 홈런을 날렸다. 최동원은 아니라고 했는데 한문연이 세 번이나 몸쪽 공을 요구하다 맞았다. 사실상 쐐기포였다. 한문연은 터덜터덜 마운드로 걸어가 사과했고, 최동원은 씩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출범 3년째를 맞은 84년 프로야구는 최동원에서 시작해 최동원으로 끝났다. 83년 롯데에 입단한 최동원은 84년 페넌트레이스 100경기 중 51경기에 출장해 27승13패6세이브를 올렸다. 그는 거의 매 경기 등판 대기를 했다. 롯데 강병철 감독은 경기 중반에 2~3점 정도만 리드해도 선발투수를 내리고 최동원을 마운드에 올렸다.

후기 리그 우승팀 롯데는 전기 우승팀 삼성과 한국시리즈에서 맞섰다. 삼성은 껄끄러운 OB(현 두산)를 피하기 위해 후기 리그 마지막 2경기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아 롯데를 밀어 줬다.

강병철 감독은 1, 3, 5, 7차전에 최동원을 내세워 이기겠다는 전략을 짰다. 사실 그 방법밖에 없었다. 1, 3차전을 최동원이 완투승했고 2, 4차전은 삼성이 가져갔다. 5차전에서 최동원은 완투패했다. 벼랑 끝에 몰린 6차전, 임호균의 호투와 타선 폭발로 3-1로 앞서자 4회 또다시 최동원이 등장해 승리를 지켜냈다. 최동원은 “7차전도 던지겠다”고 했다.

원래 한국시리즈는 5~7차전을 휴식일 없이 치른다. 그런데 그해는 6차전을 끝내고 하루를 쉬었다. 롯데와 최동원에게는 천운이었다. 하지만 4경기를 등판한 최동원은 지쳐 있었다. 구속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체력이 달려 컨트롤이 나빠졌다. 오대석에게 홈런을 맞은 공도 가운데로 몰린 것이었다.

1-4로 뒤진 7회 초 롯데에 행운이 찾아왔다. 주자 1루에서 한문연이 날린 우중간 타구가 장효조의 실책성 플레이와 겹쳐 3루타가 됐고 롯데는 한 점을 따라붙었다. 이어 정영기의 바가지 안타 때 한문연이 홈을 밟았다.

8회 초 주자 1, 2루에서 유두열이 김일융의 공을 통타해 스리런 홈런을 날렸다. 6-4, 기적 같은 역전포였다.

9회 말 마운드에 오른 최동원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허리를 숙여 스타킹을 만진 뒤 고개를 들 때 찡그린 얼굴이 카메라에 잡혔다. 한문연은 “그때 동원이 형은 정말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팀이 역전을 하자 갑자기 공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정현발과 배대웅을 삼진으로 처리했다. 남은 한 타자는 장태수. 풀카운트에서 한문연은 바깥쪽 직구 스트라이크를 요구했다. 공은 사인과 정반대로 왔지만 장태수는 몸쪽 높은 직구에 배트를 돌렸다 황급히 거둬들였다. 한문연은 스윙 여부를 판정하는 1루심을 향해 “체크, 체크”라고 소리쳤다. 최동원은 헛스윙 삼진을 확신한 듯 활짝 웃고 있었다.

고속터미널 근처 팰리스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우승 파티가 열렸다. 숙소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한문연이 “행님 갑시다”고 했다. 최동원은 “죽겠다. 불 끄고 먼저 가라”고 말한 뒤 침대에 푹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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