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만 있으면 지능 올라가고 과학의 문도 열린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36호 12면

민동필 박사는 이번 아시아과학캠프(ASC) 2011에서 주로 아시아권 노벨상 수상자들로 구성된 ASC 국제자문위원회의 한국 대표로 선임됐다. 최정동 기자

올해도 노벨상 시즌이 어김없이 다가왔다. 이르면 다음 달 3일부터 5일까지 노벨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언제부터인가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은 국민적 염원이 됐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안자 민동필 박사가 말하는 과학교육

다음 달 6일부터 9일까지 열리는 제14회 ‘대전 사이언스 페스티벌’의 주제도 ‘노벨상의 꿈을 향하여!’다. 건국 이래 최대의 과학 국책사업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프로젝트는 과학 강국의 토대를 마련하는 게 주요 목표지만 노벨상 수상에 필요한 과학 연구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와도 무관하지 않다. 물론 전문가들은 노벨상 수상이 인위적인 목표 설정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과학 연구와 교육, 연구·교육을 뒷받침하는 정책을 통해 달성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외국어 학습, 스키·골프 같은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과학도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체득해야 잘할 수 있다. 지난달 7일부터 12일까지 대전 KAIST에서 열린 제5회 아시아과학캠프(ASC)는 아시아 청소년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 연구자들과 식견·경험을 공유하는 범아시아적 과학 행사다. 올해는 아시아 19개국에서 192명의 고등학교·대학교 학생(18~22세)과 7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이 참가했다.

특히 청소년들이 알아야 할 과학의 길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민동필(64) ASC 조직위원장을 인터뷰했다. 서울대와 프랑스 파리제11대학(이학박사)에서 공부한 민 박사는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 과학비즈니스벨트TF 팀장,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으로서 과학 연구·교육·정책개발에 헌신해 왔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과학 연구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우선 연구할 문제를 발굴해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의 경계(boundary)가 어디고, 경계를 넘어가는 모르는 문제는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자꾸 질문해야 한다. 바보 같은 질문은 없다. ‘괴짜 질문’이 많이 나와야 한다. 경계에 빨리 도달하기 위해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 과학에서 창의성이 중요하지만 창의성은 기존 지식을 공부하지 않고 갑자기 튀어나오는 게 아니다. 창의성을 강조하기 위해 기존의 교육 체계를 우스꽝스럽게 여길 수 없다.”

-배울 만큼 배운 다음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자유가 필요하다. 자유가 없으면 좋은 연구를 할 수 없다. 창의력은 자유에서 나온다. 자유스러워야 스스로 뭔가를 시도하고 추구하려는 열정이 생긴다. 자유스러움을 추구하는 욕심은 어쩌면 인간 본성이다. 세계에서 과학의 돌파구를 만든 나라들은 희한하게도 자유로운 나라들이 더 많다. 민주주의 국가가 노벨상을 더 많이 받는 연구를 했다. 자유로운 연구 환경은 과학자가 열정을 쏟으며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다.

훌륭한 과학 연구는 ‘배움이라는 전통’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하는 자유’가 조화될 때 달성된다. 하지만 주입식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넣어주거나 이리저리 학생들의 생각을 바꿔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는 기회와 자유를 주어야 한다. 이번 ASC에 참가한 7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선생님의 가르침을 항상 의심하라’ ‘숙제하지 마라’ ‘책을 읽지 말라’, 심지어는 ‘선생님에게 불복종하라’고 주문했다. 그들이 한목소리로 젊은 세대에게 전한 메시지는 ‘스스로 의문을 던지고 문제를 만들고 그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라’는 것이었다. 정신적인 자유와 자발성을 가지라는 이야기다. 누구에게 구속받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추진할 때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문제가 나온다는 것이다.”

-창의성 외에 다른 과학의 조건은.
“과학자 공동체의 공감대도 중요하다. 어떤 문제를 풀었을 때 그 결과가 우리 생활에 도움을 주어 윤택하게 할 것이라는 공감대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유용성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창의성이 발휘돼도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쉽지 않지만 유용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문제
를 찾아야 한다.”

-국가는 과학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시 강조하자면 우리나라가 노벨상 수상에 도전하고 지식 선진국이 되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환경은 자유스러움이다. 과학 연구의 마지막 단계는 문제 해결을 위해 끈기 있게 매달리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이 끈기를 지탱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유교적인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딜레마다. 우리 학생들은 복도 저 끝에서 선생님을 보면 먼저 고개부터 숙인다. 유교 문화와 정신적인 자유스러움을 연구 활동 속에서 조화롭게 구현하는 게 우리 교육계가 해결해야 할 굉장히 중요한 과제다.”

-지식 사회에서 과학 교육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산업 사회와 달리 지식 사회에서는 똑같은 지식을 아무리 많은 사람이 공유해도 의미가 없다. 개인의 특징을 살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이 창의적인 연구 경력을 인정받는 과학자들과 자꾸 접촉해 영향을 받아야 한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귀가 넷 달린 사람이 아니다.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ASC에서 학생들이 질문하면 노벨상 수상자들도 잘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 잘 모른다’ ‘다른 선생님에게 물어 봐라’는 대답을 했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이런 자세는 학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답을 알려주고 지식을 가르쳐주는 사람이라기보다 학생들이 스스로 과학의 길을 찾아가도록 도와 주는 길잡이, 즉 멘토(mentor)가 돼야 한다. 멘토는 학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가이드라인을 주는 사람이다. 멘토는 학생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에게 정신적인 여유가 없다는 게 큰 문제다. 여유가 없으면 연구의 창의력도 교육의 열의도 있을 수 없다.”

-‘질문이 곧 과학’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학생들에게 미흡한 점이 있다면.
“학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변이 나오면 이에 대해 다시 질문하는 학생이 많지 않다. 일문일답으로 끝나는 식의 대화 양식은 과학의 방법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질문에 대한 답변에 만족하지 않고 연속적으로 집요하게 계속 파고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무엇을 모르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다른 학생들이 보기에 ‘쟤는 왜 저러나’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공격적(aggressive)이어야 한다.

외국 손님들이 우리나라 연구실을 다니면서 흔히 지적하는 게 있다. 복도에 칠판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하버드대·MIT 복도는 거의 다 칠판으로 가득 찼다. 강의실이건 복도건 마주쳤을 때 자유롭게 질문하고 답하는 과학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과학자가 되고 싶은데 자신의 머리가 나쁘고 IQ가 낮다고 고민하는 청소년들이 있을 수 있다.
“어쩌면 머리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아인슈타인의 IQ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있으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좋은 문제를 발견하고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지능은 자꾸 올라가게 돼 있다. 생각이 넓어지고 깊어진다. 더 큰 문제는 여유가 없는 것이다. 너무 바쁘면 좋은 문제를 발견하기 위해 열정을 불태울 수 없다. 일 년에 몇 편의 논문을 쓰지 않으면 교수직을 얻지 못한다고 못 박아 놓으면 좋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문제’를 우선 찾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질이 우수
한 과학자도 평범해진다. 좋은 문제와 열정이 있으면 누구나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