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바로 그 향수, 코코가 만들고 먼로가 ‘걸쳤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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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샤넬 N°.5
틸라 마쩨오 지음
손주연 옮김, 미래의창
344쪽, 1만5000원

1952년. 한 기자가 톱스타 메릴린 먼로에게 침대에서 무엇을 입느냐고 물었다. 먼로가 답했다. “난 아무것도 입지 않아요. 오직 몇 방울의 샤넬 No.5 뿐이죠.” ‘전설의 향수’ 샤넬 No.5를 말할 때 으레 등장하는 일화다. 후일 먼로는 그 인터뷰에 대해 이렇게 기억했다. “사람들은 재미있어요. 그들이 질문을 하고, 여기에 솔직하게 답을 하면 충격을 받아요.”

20세기의 아이콘이 된 향수 샤넬No.5. 『샤넬 No.5』를 쓴 틸라 마쩨오는 “사람들이 파리를 꿈꾸며 상상하는 모든 것, 사랑, 연인들의 희망 등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미된 것이 진정한 비결”이라고 말한다. 1955년 메릴린 먼로가 모델로 찍은 화보.

 샤넬 No.5의 일대기를 담은 책이다. 샤넬 No.5는 1921년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본명 가브리엘 샤넬·1883~1971)에 의해 탄생한 이래 지금까지 가장 섹시한 향수 중 하나로 꼽힌다. 전세계를 통틀어 30초 마다 한 병씩 팔리고 한 해에 1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다. 뉴욕타임스의 향수 비평가가 ‘괴물’이라 했을 정도다.

 그렇다고 럭셔리 마케팅에 관한 책이라고 예단하지 마시길…. 하나의 향수가 어떻게 시대를 대표하는 제품이 되었는지를 추적하는 내용이지만, 한편으론 인물사를 다룬 극영화 같고 다른 한편으론 향수의 역사와 비즈니스를 다룬 다큐멘터리 같다. 코코 샤넬의 행적과 동시대 문화사를 엮어낸 내공이 간단치 않다.

 우선 인생의 아이러니. 코코 사넬은 자신이 떠돌이 농부의 딸, 수도원에 버려진 고아 출신이었으며 쇼걸이었다는 것을 끝까지 감추고 싶어했지만, 그가 그토록 부정하고 싶었던 과거는 세계적 럭셔리의 대명사를 탄생시킨 배경이 됐다. 재스민과 라벤더가 자생하던 프랑스 남서부 중세 수도원 주변의 들판, 차가움과 견고함이 우러나오던 수도원 건축물 등이 그가 추구한 순수함과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형성했다는 풀이다.

 “5월 계곡의 백합에 향기에서는 아이들의 손 냄새가 난다”고 말할 정도로 후각이 예민했던 코코는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향수의 힘을 간파했다. 뿐만 아니다. 그녀는 20세기 초 프랑스 사회에서 향수가 계급을 구별해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쇼걸로 일하고, 정부(情婦)로 살아온 그는 상류층의 정숙한 여인과 도발적인 요부를 구분할 수 없는, 말 그대로 혼종의 향을 만들고 싶어했다.

 향수가 출시된 ‘광란의 20년대’도 흥미로운 시기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풍요로운 라이프스타일에 열광하던 때였고, 당시 향수는 시대의 판타지와 욕망을 정확히 포착해낸 상품이었다.

 그럼에도 질문은 남는다. 대체 90년 성공의 열쇠는 무엇일까. 전통적인 아로마인 장미, 재스민, 일랑일랑, 그리고 백단향과 인공합성물 알데히드의 절묘한 조합, 절제의 미학을 살린 향수병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저자는 “향기가 그 비밀은 아니다. 계속되는 성공의 열쇠는 대중이 쥐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이 향수의 역사와 단단히 얽힌 대중이 향수의 대변인이 됐다는 것이다. 감각의 문화사에 관심 있고, 시대의 흐름을 꿰는 크리에이터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인 책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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