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져선 안 되는 국가 주요시설…은행·병원·경찰서까지 ‘스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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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이 전력위기에 대비해 마련한 ‘전력 차단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했는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15일 오후 한전이 지역별로 돌아가며 전기를 끊는 과정에서 전기를 차단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지정된 ‘차단 제외 대상’까지 전기를 끊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상업 시설이나 공단 같은 경우엔 최소 한 시간 전에 예고하고 전력을 차단하게 돼 있지만 이도 지켜지지 않았다. 매뉴얼에 따르면 전력이 부족해 송전을 제한할 때 전력을 차단하는 순서는 ‘일반주택→경공업공단→기타 중요 고객’ 순이다. 가장 먼저 전력이 차단되는 일반주택과 저층아파트, 소규모 상가 등은 예고 없이 전력을 끊을 수 있다. 문제는 경공업공단과 상업 업무용 시설이다. 이들 시설은 정전으로 인한 피해를 감안해 전력 차단 1~2시간 전에 정전을 예고하게 돼 있다. 하지만 전국 곳곳에선 “예고 없는 정전으로 원료를 못 쓰게 됐다”는 공장주의 아우성이 나왔다.

 주요 군부대와 행정관서 및 금융기관·종합병원 등은 ‘전력 차단 제외 대상’이지만 국세청·대전시청·창원시청 등에 전력 공급이 끊겼고, 경찰서·종합병원·은행 등이 정전으로 업무가 마비됐다. 한전 측에선 너무 긴박한 상황이어서 매뉴얼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한전 관계자는 “긴급상황이 벌어지다 보니 사전예고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 같다”며 “비상 발전 매뉴얼 발동이 처음이다 보니 적잖은 혼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한국전력 김쌍수 전 사장이 전기요금을 억제하는 정부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임기 만료 직전 사의를 표명하는 등 내부 기강 해이가 대형 사고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후임 김중겸 사장이 아직 공식 취임을 하지 않아 현재 한전 사장 자리는 공석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컨트롤타워가 없다 보니 전반적인 대응 능력이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국민 여러분께 큰 불편을 끼쳐 송구스럽다”고 사과 했다.

손해용·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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