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5시간 블랙아웃] “엘리베이터에 갇혔어요” 구조요청 1900여 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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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의 수요예측 잘못으로 전국 곳곳에 정전사태가 벌어진 15일 오후 서울 삼성동 봉은사 앞 사거리에 신호등의 불이 꺼져 있다. [김형수 기자]

15일 오후 대규모 정전 사태로 전국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주택가와 상점가, 공공시설, 야구장을 가리지 않고 전기가 끊겼고 거리의 교통 신호등이 멈춰 혼란이 가중됐다. 이날 정전으로 엘리베이터 등이 멈추면서 전국 소방서에는 1900건이 넘는 구조 요청이 들어왔다.

 이날 정전이 된 곳은 전국적으로 162만 가구에 달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 46만, 강원·충청지역 22만, 호남지역 34만, 영남지역 60만 가구 등이다. 정전으로 대학 수시모집 원서접수 일정에 차질이 빚어짐에 따라 이날 원서 접수를 마감하기로 했던 가톨릭대, 국민대, 동아대, 부산대, 인천대 등 35개 대학은 16일까지 원서를 받기로 했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한 20층 건물은 오후 5시50분 일제히 전력 공급이 중단됐다. 전기는 곧 들어왔으나 컴퓨터가 먹통이 되자 직원들은 서둘러 퇴근했다. 7층에 근무하는 회사원 이모(27·여)씨도 비상전력으로 운영되던 엘리베이터에 10명과 함께 탔다. 그러나 4층을 지나던 중 운행이 갑자기 중단되며 이씨 등은 엘리베이터 안에 갇혔다. 비상전화는 물론 휴대전화도 걸리지 않자 안에 갇힌 사람들의 공포심은 커져만 갔다. 이씨는 “30분 만에 안에 갇힌 남성들이 힘을 모아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고, 3층과 4층 사이에 멈춘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은 뛰어 내렸다”고 전했다.

 구로구 구로3동의 14층짜리 건물도 오후 4시30분쯤 전기가 나갔다. 이 회사 13층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손모(26·여)씨는 “구로구 일대에 정보기술(IT) 업체가 밀집해 있는데 일제히 서버가 나가는 바람에 전송 중이던 파일이 온데간데없이 날아가는 등 일대 사무실의 업무가 마비됐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서울시내 신호등 250여 곳도 한동안 작동을 멈춰 경찰관의 수신호로 대체해야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례적으로 교통경찰 재난상황반이 가동됐다”고 말했다. 이들 신호등에는 한동안 전력 공급이 오락가락해 저녁 늦게까지 정상 복원이 이뤄지지 못했다. 이날 오후 6시44분 목동구장에서 넥센이 두산을 상대로 1대0으로 앞선 1회 말 공격 상황에서 정전으로 조명이 꺼지면서 경기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정전으로 경기가 중단된 것은 통산 다섯 번째다.

  일부 네티즌은 이번 정전 사태를 놓고 197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말했다. 아이디 @Life***는 “잠실은 정전입니다. 70년대 이후 이런 무작위 정전은 처음이네요”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mar***도 “예고 없는 정전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요. 무슨 70년대도 아니고”라고 했다. 네티즌 사이에선 한전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겠다는 얘기도 나왔다. @Shi***도 “고모가 한전에 소송을 걸겠다고 한다. 한전 때문에 오늘 장사 말아먹었다”고 썼다.

 전국의 일부 병원과 공공기관도 정전으로 혼란을 겪었다. 충북 청주시의 하나병원은 오후 4시15분부터 50여 분간 정전이 돼 진료에 차질을 빚었다. 전산 작업이 중단됐고 수술도 응급한 경우를 빼고는 1시간가량 연기해야 했다. 대기실에 있던 외래환자 20여 명은 진료가 중단되자 발길을 돌렸다. 병원 관계자는 "비상 전력을 공급해 응급실과 수술실은 정상적으로 운영했다”고 말했다. 성남시 분당구의 A병원은 오후 1시48분 갑자기 정전이 되면서 자기공명영상촬영(MRI) 장치와 다중검출 전산화단층촬영장치(MDCT)가 고장 났다.

 경남 창원시의 스카이웰빙 건물도 오후 4시쯤 갑자기 정전이 되면서 입주한 학원과 독서실, 음식점, 은행이 한동안 영업을 하지 못했다. 전기가 나가면서 인터넷 전화가 불통되고 엘리베이터에 사람들이 갇히기도 했다. 대구에서도 신호등 작동이 중단되면서 교차로마다 극심한 차량 정체 현상이 빚어졌다.

글=송지혜 기자, [전국종합]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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