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뭉쳐야 사는데 우리 기업들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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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경제부문 기자

최근 정보기술(IT) 업계의 대세는 ‘합종연횡(合從連橫)’이다. 단단한 파트너십도 대세 앞에선 휴지 조각이다.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인텔은 13일(현지시간) 구글과 협력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스마트폰 칩을 공동 개발하기 위해서다. 구글은 인텔이 수십 년 동안 파트너로 일한 마이크로소프트(MS)의 경쟁사다. MS도 달라졌다. 최근 인텔의 라이벌인 영국계 반도체 회사 ARM의 칩을 지원하는 운영체제(OS) ‘윈도8’을 선보인 것이다.

 다급하면 경쟁사끼리 손잡기도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4일 구글에 맞서기 위해 광고 시장에서 경쟁해 온 야후·MS·AOL이 손을 잡았다고 보도했다. 업체마다 스스로 소화할 수 없어 광고 대행사에 팔아온 물량을 서로 판매해 수익금을 나누기로 한 것이다.

 자동차 업계도 다르지 않다. 지난달엔 일본 도요타와 미국 포드사가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1970년대부터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개발해온 도요타와, 픽업트럭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강점을 갖고 있는 포드가 서로 판매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내놓은 전략이다.

 이 ‘대세’에 적응하지 못한 회사는 나가떨어지기도 한다. 휴대전화 1위 업체 노키아는 올 2분기 스마트폰 판매량이 애플과 삼성전자에 뒤졌다. 스마트폰 시장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자사 OS ‘심비안’을 고수하다 맞은 위기다.

 국내 기업들은 어떨까. 대체로 대세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는 듯하다. 간간이 합종연횡을 하기도 하지만, 칸막이를 치고 자사 경쟁력을 고집하는 모양새가 적지 않다. 탄탄한 하드웨어(HW) 경쟁력을 믿고 선전하던 국내 전자업체들은 소프트웨어(SW) 경쟁력을 앞세운 애플에, 내수 이동통신 사업에 안주하던 이동통신업체들은 무료 통화·메시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에 작지만 한 방 맞았다.

 글로벌 기업들에 밀리지 않으려면 사안에 따라 종으로 횡으로 힘을 공유하는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오래전 삼성이 소니와 합작회사를 세워 힘을 키웠듯이 적이라 할지라도 파트너로 삼는 발상이 절실하다.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개방성이 키워드(key word)인 시대엔 어울리지 않는 비즈니스 전략일 듯싶다.

김기환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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