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공기업 2년 전 ‘초임 깎기’ 원상회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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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에 찍힌 월급이 165만원입니다. 생활이 빠듯하죠.”

 지난해 2월 신한은행에 대졸 공채로 입사한 김모(28)씨의 말이다. 이 은행은 2009년 신입 행원부터 임금을 20% 깎았다. 김씨는 “은행원이라고 하면 주변에선 월급을 많이 받는 줄 알아서 티도 못 낸다”며 “이 월급으로 학자금 대출을 언제 다 갚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씨처럼 임금이 20% 깎인 채 들어온 1~3년차 은행원은 모두 6000여 명. 정부가 초임을 깎되 청년인턴 채용을 늘린다며 2009년 도입한 ‘일자리 나누기(잡셰어링)’ 정책의 산물이다. 일방적으로 임금이 깎였던 신입행원들은 임금차별을 문제 삼으며 대규모 항의집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대폭 삭감됐던 공공기관과 시중은행 신입직원 임금이 제자리를 찾을 전망이다. 정부가 기존 직원과의 임금 격차를 단계적으로 없애도록 지침을 바꾸기로 했다. 은행권을 중심으로 신입직원들의 반발이 커지자 정부가 물러선 것이다.

 1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공공기관 기존 직원의 임금 인상률은 낮추고, 2009년 이후 입사자의 임금은 크게 올리는 방식으로 공공기관 예산집행지침을 바꿀 계획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이르면 다음 주에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서면의결을 거쳐 지침을 개정해 7월 1일부터 소급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벌어져 있는 임금 격차를 없애는 데 걸리는 기간은 입사 2년 차부터 2~5년 동안으로 잡았다. 이렇게 임금인상률을 차등 적용하면 신입사원들은 늦어도 6년 차가 되면 기존 직원과 임금 차이가 사라지게 된다.

 다만 정부는 추가로 재정을 지원하진 않고 해당 기관의 총 인건비 범위에서 해결하도록 원칙을 세웠다. 따라서 신입 임금을 올리는 대신 기존 직원들의 임금 인상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은행들 역시 정부 지침이 확정되는 대로 노사협의를 거쳐 신입 행원 임금을 올리겠다는 입장이다. 시중은행은 그동안 정부와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임금 회복에 나서지 못했다. 한 은행 인사 담당 임원은 “은행도 공공기관 성격이 있는 만큼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따를 수밖에 없다”며 “현재로선 2년 정도 기간을 두고 선배들 수준으로 회복시켜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2년 동안은 임금인상률에 추가로 10%포인트를 얹어 신입 행원 임금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이러한 방안을 순순히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이 방안대로라면 앞으로 들어올 은행과 공공기관 신입 직원들은 여전히 낮은 초임을 감수하면서 2~5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조건 없이 초임을 즉각 원상회복해야 한다는 양대 노총의 주장과는 거리가 있다. 금융산업노조 오치화 부장은 “잡 셰어링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다 보니 초임을 원상회복시키지 못하고 단계적으로 조정하겠다는 것”이라며 “노동계로선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전체 은행권 평균 급여는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 가장 많은 급여를 받은 건 씨티은행으로, 1인당 월 평균 617만원을 받았다. 신한·국민·SC제일·우리·외환은행은 500만원대를 기록했다. 가장 낮은 건 하나은행으로 월 평균 급여가 417만원이었다.

 한애란 기자

◆잡 셰어링(Job Sharing)=임금과 노동시간을 줄여 고용을 늘리는 정책. 금융위기 이후 실업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가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방안으로 추진했다. 당시 정부는 기존 공공기관 직원들의 임금을 떨어뜨리려 했지만 노동조합 저항에 부닥치자 신입사원 초임을 깎았다. 초임 삭감 비율은 임금 수준에 따라 10~30%로 정했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은 평균 15%, 시중은행은 20%씩 초임을 삭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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