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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이섬 석유 의존도 0% 도전…하와이 그린에너지 개발 팔 걷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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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미국 하와이주(州) 호놀룰루의 와이키키 해변. 서핑(surfing) 천국이자 세계적인 휴양지로 유명하다. 1년 내내 비키니를 입은 팔등신의 미녀들과 구릿빛 몸짱의 남성들이 반라(半裸)로 길거리를 활보하는 도시다. 그런 와이키키가 요즘 각종 공사로 어수선하다. 도로와 인도를 새로 포장하고, 야자수를 옮겨 심고, 정보기술(IT) 인프라를 깔기 위해 땅을 파헤치는 작업이 일상화됐다. 올 11월 12~13일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하와이 정상회의 준비에 분주한 와이키키의 풍경이다. 팀 존스 APEC하와이조직위 부위원장은 “이번 APEC은 21개국 2만여 명의 정부 관계자와 대표단이 몰려오는 하와이 역사상 최대의 국제행사”라며 “경제적 효과만 1억2000만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APEC을 통해 하와이 주정부는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성을 상징하는 ‘알로하(Aloha) 정신과 문화’를 세계에 알릴 계획이다. 동시에 관광 외에 지구 환경보존을 위한 '탈(脫)석유 정책’에 APEC회원국의 투자와 협력을 끌어들인다는 방안도 세워놓고 있다. 닐 애버크롬비(Neil Abercrombie·사진) 하와이 주지사는 “하와이는 서양의 서쪽 끝이 아니라 아시아의 동쪽 끝이지요. 하와이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은 서로 형제·자매입니다”고 말했다. 하와이가 아시아의 일원임을 강조했다. 그는 “APEC 회의를 계기로 하와이가 관광명소뿐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경제 중심지로 부각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애버크롬비 주지사는 한국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그는 지난 2일 호놀룰루 주지사 집무실로 한국 기자를 초청해 만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으며, 지난 대선 때 일조했다. 하와이 태생의 오바마 대통령이 오는 11월 12~13일의 APEC 정상회의를 하와이에서 열도록 한 것은 고향에 대한 ‘보답’이었다고 한다.

 애버크롬비 주지사는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긴 줄을 서는 것은 한국 국민에겐 모욕(insulting)이었다”며 “(한국이 2008년 10월 미국 비자면제프로그램의 신규 가입국이 되고) 미국 여행이 자유로워짐에 따라 앞으로 한국-하와이 교류가 더욱 촉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와이는 한국을 형제로 생각한다는 점을 널리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태양력·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한국과 협력하고 싶다는 의사는 강력했다. “석유 일변도의 에너지 정책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하와이 마우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설탕공장(HC&S)에서 전용트럭이 사탕수수를 옮기고 있다. 이 공장은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추출한 뒤 남은 찌꺼기를 활용한 신재생에너지로 전력을 생산해 가동한다.

 인구 130만여 명의 하와이는 석유·석탄 화석연료 의존도가 90%가 넘는다. 석유는 본토로부터 3200㎞ 떨어져 있어 중동에서 직접 수입한다. 2008년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까지 치솟자 에너지 대란을 겪기도 했다. “에너지 독립 없이는 경제발전도, 정치적 독립도 없다”는 게 애버크롬비 주지사의 지론이다.

 하와이에는 해마다 전 세계에서 700만 명이 방문한다. 관광산업 규모만 지난해 기준으로 106억 달러(약 10조6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렇게 벌어들인 관광수입은 석유를 사오는 데 고스란히 써 버린다. 로비 앨름 하와이전기공사(HECO) 부사장은 “관광수입 106억 달러 중 5분의 4가량인 84억 달러로 석유를 구매해와 전기발전에 쓴다”며 “이 돈을 다른 분야에 재투자한다면 하와이는 비약적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가 ‘하와이 클린 에너지 이니셔티브(Hawaii Clean Energy Initiative)’다. 신재생에너지를 적극 도입하고, 전기자동차(EV) 보급을 확대해 ‘클린 하와이(Clean Hawaii)’를 만들며, 스마트 그리드로 에너지 효율성을 향상하는 ‘3-트랙’ 전략이 그 핵심이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석유 소비량의 70%를 절감하는 ‘탈석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APEC은 그래서 중요하다.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탈석유 사업에 외국, 특히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의 투자와 협력을 끌어들이는 디딤돌로 만들겠다는 게 하와이의 구상이다. 그중에서도 한국과 일본·중국이 우선 거론된다. 하와이에서도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인구 10만 명의 섬 마우이(Maui)는 ‘석유 의존도 0%’라는 야심 찬 도전을 하고 있다. 바람·태양은 물론 사탕수수에서 사탕을 추출하고 남은 찌꺼기를 포함해 재생 가능한 모든 에너지원을 재활용해 석유를 100% 대체하는 것이다. 알랜 아라카와(Alan Arakawa) 마우이 시장은 “한국 기업의 관심과 투자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와이 이니셔티브’에는 닛산·미쓰비시를 비롯해 일본계 기업들이 이미 활발히 참여 중이다.

하와이=고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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