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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51> 직물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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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인간이 언제부터 실과 옷감을 만들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동물의 가죽을 그대로 벗겨서 깔개로 썼던 것이 옷으로 발전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전문가들은 가죽이나 식물을 꼬아 바구니를 짜던 것이 옷감을 만드는 기술로 진화했다고 보고 있다. 인류가 본격적으로 직물을 짜서 옷을 만들어 입기 시작한 때는 신석기 시대다. 그리고 옷은 1만 년에 걸친 화려한 역사를 이어간다. 아름답고 슬프면서 또 신비로운 직물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봤다.

조현숙 기자

18세기 후반 프랑스산 드레스의 한 부분. 견직물의 일종인 새틴·벨벳에 백조 깃털까지 화려함을 자랑한다.



신석기때부터 모직물 입었던 흔적 찾을 수 있어

고대 이집트 무덤의 벽화. 다양한 문양의 옷을 입은 사제의 행렬이 그려져 있다.

영국의 면방직 공장을 묘사한 1835년의 판화.

인간이 처음 만난 옷감은 동물의 털가죽이었다. 1만 년 전인 신석기 시대부터 원시적인 형태로나마 모직물을 만들어 입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양털로 옷감을 만드는 기술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기원전 1000년부터는 양 사육부터 모직물 생산까지 대규모로 이뤄졌다는 기록도 있다. 페르시아, 이집트에서 로마를 거쳐 모직 기술은 전 세계로 번졌다.

 십자군 전쟁은 모직물의 전파에 가속을 붙였다. 모직물의 한 종류인 ‘모슬린’의 유래에서도 그 흐름을 엿볼 수 있다. 모슬린은 현재 이라크에 속한 티그리스 강변 도시 ‘모술’에서 탄생했다. 모술에서 만든 얇은 직물은 십자군 전쟁을 통해 유럽인에게 알려졌다. 특유의 질감 덕분에 여성용 옷감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지금까지 그 이름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프랑스 지역 노르망디 공국 윌리엄 1세는 1066년 바다 건너 영국 점령에 성공한다. 이 일은 영국 양모산업 발전의 시초가 됐다. 윌리엄 왕은 영국을 정복하면서 많은 모직 기술자를 데려왔다. 13세기부터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많이 양모를 생산하는 나라로 자리 잡았다. 17~18세기에 걸쳐 영국의 모직물은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다. 20세기 들어 스페인에서 양 품종개량의 결과로 대량의 양모 생산에 적합한 ‘메리노종’이 탄생한다. 지금은 전세계 30개 넘는 나라에서 양을 사육하며, 모직물은 인간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옷감으로 자리하고 있다.

누에고치서 우연히 발견한 실 … ‘비단설화’에 담겨

비단은 그 결만큼이나 아름다운 탄생 설화가 있다. 기원전 2700년에서 2400년 사이. 중국의 상고시대의 황후 서능은 정원을 거닐다 누에고치를 발견한다. 황후는 누에고치를 가지고 놀다 실수로 뜨거운 차가 담긴 잔에 빠뜨리고 만다. 누에고치를 젓가락으로 건져올리려고 하자 하얗고 가느다란 실이 딸려 나왔다. 비단의 시작이다.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지만 비단의 탄생지와 시기를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다. 지금도 서능 황후는 중국에서 양잠(養蠶)의 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그가 태어났다고 알려진 산둥(山東)성은 비단의 발원지로 여겨진다. 산둥성의 이름을 딴 견직물 ‘산퉁’이 있을 정도다.

 기원전 1700년에서 1200년에 걸쳐 비단을 짜는 방법이 중국에서 완성된다. 중국에서 탄생한 비단은 고대 아시아를 휩쓴다. 모나 면직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질감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은 비단 만드는 기술을 국가 기밀로 철저히 보호했다. 양잠 기술을 빼내기 위한 다른 나라의 노력은 다양한 설화로 전해 내려온다. 고대 ‘호탄 왕국(지금의 신장 위구르 지역)’에 시집 간 중국 공주가 머리장식에 누에알을 숨겼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중세 유럽의 수도사가 모래알처럼 작은 누에알을 머릿속에 흩뿌려 숨겨왔다는 설화도 있다. 네스토리우스교 사제가 지팡이 속에 누에알과 뽕나무 씨를 숨겨 비잔틴 제국에 전해줬다는 전설까지, 문익점 이야기의 원류는 면이 아닌 견이었던 셈이다.

 비단의 아름다움은 고대 세계인을 매료시켰다. 기원전 53년 로마인은 파르티아(현대 이란 지역에 위치했던 고대 국가)와의 ‘카레(Carrhae) 전투’에서 비단을 처음 목격한다. 살벌한 전투 속에서도 파르티아인이 두르고 있는 비단의 신비로움은 로마인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기원전 4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쓸 차양을 만들기 위해 비단이 로마에 처음으로 수입되기에 이른다. 이후 로마 귀족 사이에 비단은 최고급 옷감으로 큰 인기를 끈다. 기원후 1세기 로마에서 비단은 수입 금지 사치품으로 지목되기까지 한다.

 이런 역사 속에 실크로드가 탄생했다. 고대 상인에게 대륙을 넘나드는 무역은 목숨을 건 일이었다. 하지만 비단의 아름다움은 고대 무역의 위험을 상쇄할 만한 가치를 상징하는 데 손색이 없었다. 옷감용 합성섬유 개발의 목표는 ‘실크 같은 질감’일 만큼 지금도 비단은 직물의 여왕 자리를 지키고 있다.

면직기술 발전, 산업혁명의 도화선 역할

(위에서부터)17세기 이탈리아의 실크 재킷. 명나라에서 16세기 만들어진 예복. 17세기 이란에서 만들어진 벨벳 코트.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문양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살아있다. [사진 출처=『직물 오천년(Textiles 5000years)』(제니퍼 해리스 편찬)]

마의 발상지는 고대 이집트로 꼽힌다. 메소포타미아, 바빌로니아 등 서아시아 고대 문명지 곳곳에서도 마로 만든 직물은 출현했지만 품질에서나 기원에서나 이집트를 따라갈 수 없었다. 기원전 5000년 이집트 유물에서도 아마로 만든 직물을 확인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나 로마 정치가 플리니우스가 남긴 문헌에서도 이집트 아마 직물의 명성이 기록돼 있다.

 하지만 마를 만드는 데 가혹한 수탈도 뒤따랐다. 수많은 노예를 동원한 이집트 리넨(아마 직물) 공장, 공기가 통하지 않는 작업장의 열악함을 묘사한 고대 기록이 남아 있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이끌고 나온 유대인 가운데 노예 직조가가 적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로마인 역시 군대 보급품으로 리넨을 만들기 위해 점령지였던 북유럽 곳곳에 공장을 운영했다는 문헌이 남아 있다.

 아시아에선 아마가 아닌 저마가 마직물의 주요 재료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선 고조선 시대부터 마직물을 만들어 썼을 것으로 역사가들은 보고 있다. 통일신라 시대엔 신분에 따라 서로 다른 마직물을 옷감으로 썼을 만큼 마포 제직 기술이 발달했다. 지금도 삼베·모시 등 마직물은 옷감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면의 원산지는 인도다. 기원전 3500년께 인도에서 목화는 면이라는 직물로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면직물이 꽃피기 시작한 곳은 고대 중동 지역이었다. 목화의 영어 이름인 ‘코튼(cotton)’이 아랍어에서 유래했을 정도다. 고대 중동 상인은 면직물을 전 세계로 알리는 역할을 했다.

 면직물은 만드는 법이 다른 옷감에 비해 복잡했던 탓에 산업혁명 전까지는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못했다. 기원전 1500년 인도에서 완성된 면방직 기술이 산업혁명 직전까지 별다른 발전이 없었다고 평가할 정도다. 인도에서 출발해 아시아·중동·유럽까지 면 직조기술이 전해지긴 했지만 가내 수공업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기계화와 맞물린 산업혁명은 면에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줬다. 17~18세기 면직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면공업은 직물산업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산업혁명의 도화선 역할도 해냈다.

 하지만 면직물은 식민지 수탈과 노예산업이란 그늘도 안고 있었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의 식민지에서 노예 노동의 결과로 면화가 대량 생산됐다. 미국 남부지역의 노예제는 남북전쟁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식물을 재료로 하는 면과 마는 가혹한 수탈과 노예제를 기반으로 성장했다는 어두운 과거를 함께 갖고 있다.

1930~40년대 합성섬유의 시대가 열리다

1934년 미국 ‘듀폰’사의 캐로더스 박사와 연구진은 나일론을 개발한다. 석탄, 석유를 재료로 한 최초의 합성섬유다. 나일론은 천연섬유와 비교할 수 없는 강도를 자랑했다. 1940년 나일론은 시중에 판매됐고 큰 인기를 끌었다. 1만 년 인간의 의류 역사에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1941년 영국의 화학자 J R 윈필드와 J T 딕슨에 의해 폴리에스테르가 탄생했다. 화학섬유의 탄력성에 착용감까지 자랑했다. 1944년 아크릴, 1959년 폴리우레탄 등 20세기 중반 합성섬유 개발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화학섬유 산업은 기술의 진보와 함께 빠르게 발전했다. 그리고 그 열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제 섬유의 영토는 건축·토목·항공·자동차·의료·화장품에서 식품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인공혈관의 재료도 폴리에스테르를 기반으로 한 합성섬유다. 지난 4일 막을 내린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큰 주목을 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육상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 그의 의족(義足)도 미 듀폰사가 개발한 합성섬유 ‘케블러’가 재료였다.

도움말·자료

최인려 성신여대 교수(복식문화학회 회장), 국립부여박물관 『직물의 역사』 『섬유 이야기』 『세계의 직물』 『한국 직물 오천년』 『직물 오천년(Textiles 5000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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