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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는 국력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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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오영환
외교안보 데스크

대륙 세력은 해군력 증강에 신중하다. 지정학적 제약 때문이다. 육지에 국경선을 두다 보니 해군력보다 지상 전력을 우선하기 마련이다. 독일을 보자. 1800년대 중반 유럽의 강국으로 떠올랐을 때 주력함(capital ship) 대신에 소규모 전함 건조에 집중했다. 해양 세력 영국의 해군력 우위를 인정하는 전략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히틀러도 주력함 건조를 포기했다. 잠수함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유일한 예외는 1900년대 초였다. 당시 티르피츠 해군장관이 대양함대 건설을 주도했다. 강한 해군력을 갖추면 영국이 독일과의 대결을 피할 것으로 판단했다(리스크 이론). 이 계획으로 독일은 세계 제2의 해양세력이 됐다. 영국 해군력의 약 40% 수준까지 이르렀다. 대양함대는 당시 독일 부상(浮上)의 상징이자 국가적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독일은 1차 세계대전(1914~18년) 직전 영국과의 해군 군비 경쟁을 거둬들였다. 전쟁 전 10년간 국방예산의 19~26%를 해군에 투입했지만 국방 예산의 60%를 쓰는 영국 해군을 당해낼 수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소련의 해양 전략은 접근 거부(access denial)였다. 해양 세력 미국의 항공모함에 맞서기보다는 잠수함과 소규모 함정으로 항모의 접근 차단에 주력했다. 스탈린·흐루쇼프·브레즈네프 모두 국내 해군 세력의 저항을 묵살했다. 잠수함과 지상 배치 전투기로 미국의 이동형 폭격 기지인 항모 전단과 힘의 균형을 이루는 전략이었다. 대륙 세력의 공세적 해양 전략은 그만큼 쉽지 않다. 미국의 항모 전력이 몰고온 결과다.

 중국의 해군력 증강이 눈부시다. 중국은 대륙국가다. 14개국과 국경을 나누고 있다. 그중에서 4개국(러시아·인도·파키스탄·북한)이 핵 보유국이다. 국경은 더없이 광활하다. 지상 전력에 무게가 쏠릴 수밖에 없다. 중국은 이런 환경 속에서도 공세적 해양 전략을 펴기 시작했다. 첫 항모 바랴크호가 지난달 시험 운항을 마쳤다. 내년 바랴크호의 취역에 맞춰 항모 전단을 축으로 제4 함대를 창설할 것이란 보도다. 최남단 관광지 하이난다오 산야(山亞)기지에 사령부를 둔다고 한다. 남중국해와 면한 곳이다. 2015년 이후엔 자체 기술로 개발한 항모를 배치하고, 향후 10년 동안 다수의 항모를 건조할 계획이다. 항모 타격용 탄도미사일 둥펑(DF)-21의 실전 배치도 임박했다(지난달 미 국방부 의회 보고서). 해군력을 밖으로 투사(投射)하면서 미국 해군의 접근을 막는 움직임이다.

 현재의 중국을 정확히 1세기 전 대양함대 건설에 나선 독일에 견주는 전문가가 적잖다. 중국의 해군력 증강은 89년 이래 국방비의 두 자릿수 증가율에 힘입은 바 크다. 경제 발전에 따른 자신감과 민족주의도 빼놓을 수 없다. 전략도 연안 방위에서 근해로 반경을 넓혔다. 국가가 대국화하면 자기 주장도 강해지는가. 서해와 동중국해·남중국해를 내해(內海)로, 배타적경제수역(EEZ)은 영해로 간주한다. 동남아 국가·일본과의 영토 분쟁이나 해상 충돌이 끊이질 않는 이유다. 중국은 지금 원해(遠海)도 넘본다. 인도양·아라비아해 쪽 해외 기지 확보에 나섰다. 파키스탄 서남부 그와다르항에 해군 기지를 건설키로 한 합의는 대표적 예다. 대양해군의 포석이 아닐까.

 미국의 해양 패권은 도전을 받고 있다. 60년 만이다. 재정 적자에 따른 국방비 삭감으로 신규 투자가 어렵다. 세계 경제 질서에 이은 해양 질서의 재편은 불가피해 보인다. 아시아 국가 간 군비 경쟁도 심해질 것이다. 우리도 국력에 걸맞은 해군력을 갖출 수밖에 없다. 무역입국 한국에 안전한 바닷길은 필수다. 이어도 쪽 EEZ 분쟁에도 대비해야 한다.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은 자위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떠다니는 기지(항모)를 갖추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우리 최남단에서 함정과 잠수함이 발진할 곳이 있어야 국익을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오영환 외교안보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