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 지방관료에게 “원고 없이 연설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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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바오

지적 호기심이 강하고 틀에 박힌 관료주의를 거부하는 원자바오(溫家寶·원가보) 중국 총리의 업무 스타일이 부하직원들에게는 ‘두통거리’로 여겨졌다.

원 총리는 측근들이 사전에 연출해놓은 방문 일정이나 경직되고 단조로운 업무보고에 극도의 거부감을 보였다. 이 때문에 그의 눈높이에 맞추느라 비서나 지방 관료들이 애를 먹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2003년 11월 12일자 미국 외교전문에 소개된 내용이다. 베이징 주재 미 대사관 조너선 알로이시 정무 참사관이 왕전야오(王振耀) 전 민정부(民政部) 재난구호국장의 말을 인용해 작성한 글이다.

 외교전문에는 왕 전 국장이 2002년 당시 부총리였던 원자바오를 수행해 세 차례 중국 내륙 지방을 찾았을 때 일화가 담겨져 있다.

 원 총리는 중부 지역의 한 도시를 시찰하면서 시장에게 비상 구호 대책 관련 설명을 원고 없이 해줄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통계 수치를 제대로 기억 못한 시장은 원고를 계속 읽어 나갔다. 원 총리가 그를 신랄히 비판했다.

 “여보세요. 시장, 지난 몇 년간 이곳의 관리였잖소. 그렇다면 주민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각종 통계를 확실히 알고 있을 것 아니오. 나와 내기 하나 합시다. 만약 당신이 원고를 치운다면 나도 내 차례 때 원고 없이 말하겠소.”

 시장은 느닷없는 원 총리의 제안에 놀라 원고를 치웠지만 원 총리가 다른 곳을 볼 때마다 힐끔 원고를 훔쳐봤다고 왕 전 국장은 전했다. 왕 전 국장은 “그 가련한 시장은 한겨울이었는데도 셔츠가 땀에 흠뻑 젖었었다”고 회상했다.

 원 총리는 현지 시찰을 위해 미리 예정된 어떤 마을을 찾으면 인근 다른 지역을 둘러보는 일정은 없느냐고 관료들의 허점을 찌르고 나올 사람이라고 왕 전 국장은 평했다.

 공적 업무에는 까다로웠던 원 총리지만 사적인 요구는 소탈했다. 그는 지방 관료들이 주최하는 연회보다는 호텔 방에서 단출히 식사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왕 전 국장은 전했다.

 한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외교전문에 따르면 오사마 빈 라덴은 9·11 직후 알카에다 내부에서 자신에 반대하는 쿠데타가 발생할 것을 염려해 조직원을 체포·고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바 미군기지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된 사우디 아라비아 태생의 알카에다 조직원 압둘 부카리는 2001년 10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스파이 혐의로 알카에다 조직에 체포돼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빈 라덴이 모르는 사이에 우즈베키스탄 무장단체 지도자에게 자금을 건네는 일을 진행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빈 라덴이 자신의 행동을 쿠데타 계획으로 여기고 체포했다고 덧붙였다.

홍콩=정용환 특파원, 서울=임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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