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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박카스 수퍼 판매 이후 … 할 일 안 하는 약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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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신성식
선임기자

우리 국민은 약을 많이 먹는다. 처방전에 평균 4.16개의 약이 들어간다. 선진국의 두 배 정도다.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사 먹는 일반약도 많다. 약이 많으면 약끼리 충돌해 부작용 위험도 커진다. 약도 궁합을 따져야 한다는 뜻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강윤구 원장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처방전 없이 사서 먹는 해열진통제 아스피린과 관절염 치료용 비(非)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를 같이 먹으면 위장장애가 생기거나 위에서 피가 멈추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약들이 부지기수다.

 자동적으로 약의 궁합을 체크하는 장치가 의약품 처방·조제 지원서비스(DUR·Drug Utilization Review)다. 2010년 12월 1단계로 의사 처방약에 대해 시행했다. 의사가 처방하거나 약사가 조제할 때 중복 복용을 체크하고, 동시 복용 금기 약물과 어린이·노인·임산부 금기 약을 걸러 낸다.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하지만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사는 일반약은 빠져 있었고 1일 2단계로 DUR을 확대하기로 했으나 무산됐다. 대한약사회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약사회는 “의약품 안전 사용을 위한 일반의약품 DUR과 의약품 약국 외 판매(일반약 수퍼 판매)는 상반된 정책인데 이를 병행하려는 보건복지부는 입장을 표명하라”고 요구했다. 또 “약국 행정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때까지는 일반의약품 DUR 점검 협조가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가 환자 안전을 위해 DUR을 추진한다면서 환자 안전을 저해하는 일반약 수퍼 판매를 허용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게 약사회 주장인 것이다.

 일반약 수퍼 판매는 국민 편의를 위해 안전성이 입증된 일부 약을 약국 밖에서 파는 것이다. 국민 대부분이 찬성하는데 약사들만 반대하고 있다. 일반약 판매와 DUR 확대는 별개 문제다. 국민의 의약품 오·남용 방지를 위해 DUR은 꼭 필요한 제도다. 약사회도 그 취지에 동감하고 협조해 왔다. 하지만 갑자기 ‘국민 안전’을 내세워 입장을 바꿨다. 일반약 수퍼 판매를 막기 위한 딴죽 걸기요,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려는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일반약을 수퍼에서 팔면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는 약사회 주장이 공허하게 들린다.

 약사들의 중요한 기능은 복약지도(服藥指導)다. 약사들은 이를 제대로 하지 않고 복약지도료를 받는다는 비판을 받자 최근에는 그림으로 표현한 복약지도문을 제공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반약 DUR이 없으면 복약지도의 핵심이 빠지게 된다. 생각을 바꿔보자. 설사 수퍼에서 감기약을 팔더라도 일반약 DUR을 도입하면 환자들의 발길을 약국에 붙드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신성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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