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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미국 고용지표 추락은 양날의 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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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달 미국의 신규 고용이 66년 만에 처음으로 ‘제로(0)’를 기록한 것은 충격적이다. 9%대로 치솟은 실업률은 풀리기는커녕 더욱 악화될 조짐이다. 미국의 신규 고용은 5월 5만4000명, 6월 1만8000명으로 부진하다 7월에 11만4000명 늘어나 잠시 반짝했다가 8월에 다시 곤두박질한 것이다. 미국이 고용시장에 새로 유입되는 노동력을 흡수하려면 매달 최소한 15만 개의 일자리는 생겨야 한다. 고용시장의 불안이 소비수요를 감소시켜 더블딥(이중 경기침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당장 미국은 광범위한 경기부양책이 절실하지만 이 같은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지난 3년간 미국은 초(超)저금리와 양적완화, 재정투자 확대 등 총력전을 폈지만 경기침체와 고용불안을 막지 못했다. 문제는 앞으로 기존의 경기부양책조차 운신 폭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미국은 정부부채 한도를 올리면서 긴축재정을 약속했다. 재정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한 셈이다. 여기에다 미국의 정책금리는 제로 수준으로 내려가 있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6%에 이른 상황에서 더 이상 돈을 풀기도 어렵다.

하지만 길게 보면 미국 경제의 고통은 자연스러운 조정과정이라 볼 수 있다. 미국은 그동안 인위적인 정책 수단들을 지나치게 많이 동원했다. 그 금단(禁斷)현상이 후유증을 낳는 중이다. 현금을 쌓아놓은 기업들조차 투자를 망설이며 신규 고용을 꺼리고 있다. 이런 고통스러운 조정과정은 경제주체들 사이에 바닥이란 인식이 싹틀 때까지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 물론 부정적 영향만 있는 게 아니다. 미국의 달러 살포로 치솟은 국제 원자재 가격은 수요 감소 전망에 따라 급락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거대 시장인 미국과 유럽의 침체로 한국 경제도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지난달 무역흑자가 8억 달러대로 내려앉았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역시 연초의 4%대 중·후반에서 4.0%로 자꾸 낮아지고 있다. 해외 경제 불안의 여파가 한국에도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세계 경제의 조정과정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면, 한국도 장기전을 각오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일시적 현상”이나 “계절적 요인”을 타령하며 마냥 손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앞으로 인플레이션 압박은 줄고 디플레이션 압력은 높아질 게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두더쥐 잡기’ 식의 물가 단속에 치중할 때가 아니다. 장기적 안목에서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어느 때보다 과감한 서비스업 규제 완화로 내수 기반을 확충하는 게 절실하다. 그래야 과도한 대외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또한 차세대 성장 산업에 대한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로 승부를 걸어야 4%까지 떨어진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양날의 칼인 세계 경제의 조정과정에서 단기적 대증(對症)요법보다 입에 쓴 보약을 챙겨야 한국 경제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위기 속에 영웅 나고 불황 속에 거상(巨商) 난다’는 말이 있다. 멀리 보면 지금이야말로 우리 경제가 또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