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면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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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유대인은 전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65%를 배출했다. 또 포춘이 선정한 글로벌 100대 기업의 40%를 소유하고 있으며 지구촌 백만장자의 20%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유대인이 이처럼 경제 분야에서도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경제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유대인 부모는 일상생활 속에서 자녀에게 합리적인 경제관을 가르친다. 예를 들면 이유 없이 용돈을 주지 않는데, 이를 통해 심부름 같은 정당한 노력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또 형제간 나이 차이가 있어도 같은 심부름에는 용돈을 똑같이 줘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을 깨닫게 해준다.

 돈의 가치도 현실적으로 가르친다. 유대인은 돈이 많은 사람이 훌륭하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학문이나 지식이 뛰어나더라도 가난하면 존경받지 못한다. 이런 가치관은 돈에 대한 집념을 갖게 하고 창조적 기업가 정신의 원천이 된다. 돈을 중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절약과 절제, 자선과 선행을 가르침으로써 돈만 아는 비정한 인간이 되지 않도록 경계한다.

 우리의 경제교육 현실은 어떤가.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자녀가 돈을 모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어린아이가 돈을 알면 영악하다고 생각한다. 학교나 책에서는 대체로 부유한 것보다 청빈이 훌륭한 가치라고 가르친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라든지 ‘어떤 재상이 돌아가셨는데 장례 치를 비용마저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는 식의 청백리 얘기를 흔히 듣는다. 본질에 눈감고 허위를 가르치는 교육이 아닌가 한다.

 이런 면에서 얼마 전 교육과학기술부가 경제교육을 오히려 축소하기로 한 것은 유감스럽다 하겠다. 교과부는 고교 교과과정인 ‘일반사회’ 과목을 중학교로 내려보내는 한편 선택과목인 ‘생활경제’를 폐지한다고 했다. 이후 비판 여론이 일자 생활경제 과목을 유지하기로 했지만 학교 경제교육이 위축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경제교육은 생산·소비·금융 등 경제원리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경제의식을 함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우리의 학교 경제교육은 생활경제보다 이론 위주다. 어려운 경제 논리와 용어는 학생들이 경제에 대한 흥미를 쉽게 잃게 한다. 또 고등학교를 나와도 금융·부동산 등 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경제 상식을 모르기 십상이다.

 기업 활동이나 대·중소기업 관계에 대한 부정적 서술도 문제다.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인해 학생들에게 올바른 경제관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근본적 한계로 지적된다.

 우리와 달리 선진국은 오히려 경제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이 민간 위주로 이뤄지던 경제교육에 국가가 나서서 지원하는 것이라든지, 영국이 전 학년에 걸쳐 금융교육을 강화해 나가고 있는 것이 그 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003년부터 청소년과 대학생·교사를 대상으로 경제교육을 하면서 이 분야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해왔다. 반기업 정서가 고조되던 당시부터 시장경제의 우수성과 기업의 역할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애써온 것이다. ‘만화 CEO 열전’ ‘재미있는 경제’ 등 청소년이 읽을 만한 경제서적도 활발히 펴내 초·중·고에 보급했다. 이 같은 민간의 노력에 더하여 학교에서도 경제교육을 강화해 나간다면 장차 경제 분야에서 유대인과 같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

 일찍이 사마천은 사기 열전의 ‘화식’편에서 “산속에 묻혀 사는 청빈한 선비도 아니면서 가난과 비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가 말로만 인의를 떠드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라고 갈파하였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가야 할 청소년에게 올바른 경제관과 경제생활의 지혜를 가르치는 일은 국가와 기성세대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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