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위의 인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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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호 10면

의자와 진실의 공통점은 둘 다 불편하다는 것이다. 오래 앉아 있으면 의자는 어딘가 불편해지고, 진실 역시 깊이 파고들수록 점점 불편해진다. 김 부장은 자신의 의자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조금만 오래 앉아 있으면 다리에 피가 잘 통하지 않고 쥐가 날 것 같다. 김 부장의 의자는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좌경이다. 앉으면 기우뚱 무게중심이 왼쪽으로 쏠리면서 위태로워진다. 안 그래도 산만한 김 부장이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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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사무실에서 일한다는 것은 의자에 앉아서 일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일한다는 것은 곧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다. 하루 종일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혹은 여덟 시까지 의자에 앉아있는 것, 직장생활이란 그런 것이다. 의자에 앉아서 아침을 먹고 의자에 앉아서 출근한다. 의자에 앉아서 회의를 하고 e-메일을 읽고 거래처와 전화를 한다. 의자에 앉아서 제안서를 검토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e-메일을 보낸다. 의자에 앉아서 점심을 먹고 의자에 앉아서 커피를 마신다. 의자에 앉아서 인터뷰를 하고 품의서에 결재한다. 의자에 앉아 퇴근하고 의자에 앉아서 회식한다. 그러니까 일생을 의자에서 보내는 것이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의자에서.

일생을 이렇게 살 수는 없다. 김 부장은 의자를 바꾸기로 결심한다. 사무실을 둘러보면 다른 사람들의 의자는 다 멀쩡하다. 그런 것 같다. 불구의 의자는 오직 자신의 것뿐이다. 김 부장은 임자 없는 의자를 발견한다. 출산휴가 들어간 직원의 의자. 그것을 자신의 의자와 몰래 바꾼다. 그 의자는 반듯하다. 편안하다.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어져 있는 게 분명하다. 마치 의자가 몸 전체를 감싸 안는 것 같다. 바로 이 의자다.

일주일쯤 지나자 김 부장은 또 의자를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의자는 좀 딱딱해야 좋을 것 같다. 푹신한 것은 뭐든 퇴폐적이다. 생각의 허리를 접게 만든다. 정신의 척추와 영혼의 고관절을 다 망가뜨린다. 회의실 의자 하나가 남는 게 있어 그것을 가져와 자기 의자로 쓴다. 역시 뼈에는 딱딱한 것이 좋다. 딱딱한 의자는 앉는 사람에게 바른 자세를 선물한다. 김 부장은 만족한다. 자신의 체중을 그대로 다 받아들이지 않고 반발하는 의자의 물성이 마음에 든다. 사람으로 치자면 꽤나 품성이 강직한 사람일 것이다.

며칠을 못 가 김 부장은 강직한 의자가 불편하다. 피곤하다. 엉덩이가 배긴다. 온몸이 뒤틀린다. 바늘방석이다. 온몸의 세포가 다 곤두서는 느낌이다. 생각이, 신경이, 피가 모두 엉덩이로 가 그곳을 아주 예민하게 만든다. 엉덩이는 아주 얇은 막이 된다. 앉았다 하면 바로 터진다.
결국 김 부장은 원래 자신의 의자를 찾아와 앉는다. 왼쪽으로 기우뚱 기울어진 자세로 업무를 본다. 그것이 의자 탓이 아니란 걸 이제 김 부장도 안다. 김 부장은 원래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두 다리의 길이도 다르다. 불구는 의자가 아니라 자신이다. 몸을 바꾸지 않는 이상 의자를 바꾼다고 달라질 게 아니다. 오히려 의자의 기울어짐은 앉는 사람의 몸에 최적화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변형시킨 의자의 눈물겨운 환골탈태다. 김 부장은 그 불편한 진실 위에 앉아 있다.


김상득씨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아내를 탐하다』를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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