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200m 번개 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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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우사인 볼트(왼쪽)가 2일 남자 200m 준결승에서 역주하고 있다. 볼트는 예선과 준결승에서 레이스 중반 1위를 확정하고 후반 스피드를 줄이며 결승에 진출했다. [대구=조문규 기자]


다시 ‘볼트 타임’이다. 단거리의 제왕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가 돌아왔다. 볼트의 복귀에 대구 스타디움은 용광로처럼 뜨거워졌다. 새파란 몬도트랙에서도, 팬 서비스에서도 볼트는 최고 그 자체였다.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남자 200m 준결승이 열린 2일 대구 스타디움. 볼트가 나타나자 경기장이 술렁였다. 관중석 한쪽에서 시작된 작은 울림은 순식간에 파도처럼 경기장 전체로 퍼져 큰 함성이 됐다.

 100m 결승에서 부정출발(플라잉·Flying)로 실격했던 볼트는 출발 전 카메라가 자기에게 다가오자 갖가지 제스처를 하며 여유를 보였다.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추더니 복싱 선수처럼 두 주먹을 얼굴 앞에 가져왔다. 선수들이 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용히 해 달라는 ‘쉿~’ 소리가 경기장에 울리자 이에 맞춰 검지를 입술에 대는 센스도 보였다.

 100m 실격을 의식했는지 한 템포 늦게 출발했다. 출발반응속도는 0.207초. 7명 중 최하위였다. 준결승을 치른 21명 중 공동 19위였다.

 그러나 축지법을 쓰듯 파란색 몬도트랙을 끌어당기며 순식간에 경쟁자들을 따라잡았다. 볼트는 직선주로에 들어서면서 단독선두로 치고 나가 천천히 뛰면서도 20초31로 조 1위였다. 그는 크리스토프 르메트르(프랑스·20초17)에 이어 2위로 8명이 겨루는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은 3일 오후 9시20분에 열린다.

볼트가 결승 진출 기념 세리머니로 경기화를 벗어 관중석에 던졌다. 자원봉사자 황신애씨가 받았다. [대구=조문규 기자]

 경기는 끝났지만 볼트를 외치는 함성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볼트는 ‘번개 세리머니’로 화답했고 자신에게 가장 큰 함성을 보내준 3층 응원석에 신었던 은색 스파이크를 던져주는 화끈한 팬 서비스까지 했다.

 200m는 볼트의 주종목이다. 스타트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100m와 달리 200m는 가속도를 붙여 질주하는 능력이 뛰어난 볼트에게 딱 어울린다. 볼트는 200m 19초19의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볼트는 “실격을 당하고 나서 많이 자고 먹고 영화도 보면서 코치가 하라는 건 다 했다”면서 “100m는 기본적으로 내 잘못이지만 내가 출발을 제대로 한다면 아무도 날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김종력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플라잉(Flying)=부정출발을 일컫는 용어. 육상 경기에서 출발 총성이 울리기 전에 선수가 먼저 출발하는 경우다. 부정출발을 하는 선수가 곧바로 실격 처리되는 현행 규정은 2009년 통과돼 지난해 1월 1일 이후 열린 모든 대회에서 적용됐다.

◆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특별취재팀=장치혁(팀장)·한용섭·허진우·김종력·오명철·김우철(이상 취재)·이호형·조문규(이상 영상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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