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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성들 낡은 틀 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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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나가 마리(松永眞理·45)
에게는 전부터 도박사 기질이 좀 있었다. 1977년 대학을 졸업하던 해 그녀는 은행에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아버지의 제의를 거절했다. 그리고 당시는 작은 출판사였던 리크루트社에 입사했다.

그 일이 ‘흥미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직장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의 편집장이 됐지만 다시 도박을 감행했다. 대형 텔레콤 회사 NTT도코모에 입사해 휴대폰을 기반으로 하는 인터넷 서비스 개발에 참여한 것이다.

대부분 남성인 엔지니어들은 사용료를 높게 책정하려 했지만 마쓰나가는 값싼 요금을 고집했다. 그 전략은 효과를 보았다. NTT도코모는 현재 5백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일본 최대의 인터넷 서비스 회사다. 마쓰나가는 일본 재계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여성으로 최근 그녀가 다른 일을 찾아 곧 회사를 떠나려 한다는 계획이 보도되기도 했다.

마쓰나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직업을 가진 적은 없다. 나는 우연히 여성으로 태어났을 뿐이다.”

마쓰나가는 사회 혁명의 최전선을 달리고 있다. 요즘 사무실에서 차를 나르거나 현모양처로만 머물러 있던 일본 여성들이 일어서고 있다. 위계질서에 사로잡힌 일본 기업체 남성들이 일본의 금융제도를 망쳤다면 젊은 전문직 여성들은 신경제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그들은 그 과정에서 새롭고 독립적인 생활을 구축하고 있다. 커다란 통굽 구두를 신고 머리를 물들인 10대 펑크족 소녀들이 도쿄(東京)
의 번화가 하라주쿠(原宿)
거리를 활보한다. 자신들이 마치 그 거리의 지배자라도 된듯 한 태도다.

젊은 전문직 여성들은 결혼을 미루고 전보다 더 많이 여행하고 씀씀이가 커졌다. 나이든 여성들도 새로운 힘을 느끼고 있다. 아내들은 일본의 낡고 경직된 경제의 붕괴로 은퇴하거나 감원당한 따분한 남편들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이혼율은 지난 10년간, 특히 결혼 20년 이상된 부부들 사이에서 55% 급증했다. 도쿄의 하라주쿠 거리는 남녀간의 성전쟁을 위한 게릴라 기지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10대 소녀들은 규율을 따랐다. 그들은 얌전하게 교복을 입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가 ‘성공적인’ 남편을 찾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현재 신세대 소녀들은 터무니없을 만큼 대담하다.

그들은 가능한 한 이상한 복장을 하고 얼굴에는 짙은색 파운데이션에 연청색 아이 섀도를 바른다. 10대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새롭고 도전적인 정체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야시 히토미(17)
는 거리 한 모퉁이에 서서 여자친구를 기다리며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분홍색 미니스커트에 높은 통굽 부츠 차림이다. “키가 커서 좋다. 남자들을 내려다보면 기분이 좋다”고 그녀는 말했다.

하야시와 같은 10대들이 성장하면 일본은 달라질 것이다. “이 소녀들은 어떤 여성으로 성장할 것인가”고 무사시(武藏)
大의 사회학자 구니히로 요코(國廣陽子)
는 물었다. “그들은 남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려 하지 않는다. 남성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것은 일본인들에게는 새로운 의식구조다.”

그러나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변하지 않은 것이 아직도 많다. 직장인구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여성보다 18% 많다. 일본의 거품 경제가 붕괴하면서 남성 직원들의 일자리를 보호해주려던 기업들 탓에 직장내 여성 비율은 약간 감소했다.

한편 결혼이나 출산 후에도 계속 직업을 갖고 싶어하는 여성들은 많지만 출산 휴가 후 이전의 자리로 복귀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이 많다. 일하는 엄마들은 불충분한 탁아 시설때문에 친정 어머니나 시어머니의 도움을 구한다. 육아를 남편들에게 의지할 수는 없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아내가 매일 2시간 39분을 육아에 소비하는데 반해 남편은 고작 17분이다.

그러나 일본의 대기업들도 변화를 꾀하고 있으며 경제학자들은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여성들에게도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미래에는 경제적인 압력으로 여성들도 직업을 갖고 맞벌이를 해야 할 것이다.

신경제는 이미 일본 여성을 해방시키고 있다. 모험적인 개척정신을 지닌 마쓰나가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우연은 아니다. 일본 여성들은 남성 주도적인 일본의 기업 문화에 익숙하도록 교육받지 않았기 때문에 규칙을 준수하는 의식구조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한 신경제에서는 창의력과 적응력이 더 중시된다. 도쿄의 리서치 회사인 SRIC(삼화종합연구소)
의 저명한 경제학자 모리나가 다쿠로(森永卓郞)
는 “여성들은 미래 경제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여성들은 기업의 마인드 컨트롤을 받은 적이 없으므로 제도의 획기적인 변화상을 좀더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새로운 하이테크 벤처기업으로 몰리고 있다. 그곳에서 성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성지 편집자였던 야노 기쿠코(失野貴久子·37)
와 아오키 요코(靑木陽子·31)
는 현재 도쿄에서 가장 인기있는 온라인 여성지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에서 은행은 여성들에게 기업 대출을 해주는 일이 극히 드물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인터넷 벤처기업 투자자를 구하는데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카페글로브.컴으로 불리는 그 잡지는 3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개설됐다. “이것은 처음으로 결혼할 필요가 없어진 여성들을 위한 잡지다.

따라서 그들은 할 만한 일을 찾으려고 한다. 결혼은 아니더라도 자신을 찾는다든가 말이다”고 편집장을 맡고 있는 아오키는 말했다.

농촌 지역의 여성들도 인터넷에 끌리고 있다. 남부 규슈(九州)
에서 살고 있는 수의사 하타나카 사에코는 부친의 양계장을 현대화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양계장에서 나오는 달걀을 파는 것만으로는 사업이 번창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타나카는 4명의 어린 자녀를 가까운 놀이방에 보내놓고 사업 전략을 구상했으며 인터넷을 통한 달걀 판매를 시도했다. 그녀는 달걀을 ‘겡기 다마곤’이라 이름짓고 깜찍한 닭의 로고를 붙였으며 양계장의 달걀을 사용해 케이크도 만들어냈다. 하타나카는 지난해 여름 남편과 아버지가 놀란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한 인기있는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판매를 시작했다.

여성들은 가사와 일을 병행하는 경험에서 창의력을 얻기도 한다. 인터넷 포럼을 운영하고 있는 다케우치 아케미(竹內曉美)
는 “우리 여성들은 다시 시작하는 것에 익숙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쌍둥이 자매를 낳은 후 한 아이가 병을 앓는 바람에 정보처리기사로서의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굴하지 않고 절약 정보 등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 포럼을 개설했다. 사이트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그녀는 출판과 강연 제의를 받기도 했다. 아팠던 아이가 완치된데다 새로운 기회까지 얻게 된 그녀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야심찬 여성들은 웹디자인과 컴퓨터 그래픽을 배워 ‘소호’(집을 사무실로 이용하는 소규모 회사)
창업을 하겠다며 파소컴(퍼스널 컴퓨터의 일본식 약어)
학원으로 몰려들고 있다. ‘여성을 위한 파소컴 스타일북’, ‘파소컴 주부의 친구’ 같은 새 컴퓨터 잡지들에는 여성 소호 창업가들의 이야기가 넘쳐난다.

또 여성들은 주식시장으로도 몰려들고 있다. 경제학자 곤야 후미코는 최근까지만 해도 주식거래는 도박의 일종으로 간주돼 천시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규제완화 조치로 수수료가 인하되고 소액 투자가들이 인터넷으로 거래를 하게 되는 등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곤야를 비롯한 일단의 여성 경제학자들과 변호사들은 여성 투자가들의 모임을 발족, 스터디 그룹을 조직하고 책자를 발간하고 있다. 유료 회원이 이미 2천5백 명에 이른다. 곤야는 “일본에서 은행 이자율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고 연금은 줄어들고 있다”고 전제한 후 “여성들은 경제를 알고 싶어 한다. 전에는 경제를 공부할 기회가 없었지만 이제 그들은 주식투자를 경제 이해의 한 수단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분석했다.

지난 10년간 여성의 사회진출 기회는 꾸준히 증가돼 왔다. 1985년 국회는 고용주에게 남녀를 차별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권고’하는 남녀고용기회균등법을 통과시켰다. 그 후 1991년 봄 여성 취업률은 82%(남성 81%)
라는 기록적인 수치에 달했다. 지난해 개정된 남녀고용기회균등법은 이제 남녀차별을 불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세쿠하라’(성희롱을 뜻하는 일본의 속어)
가 유행어가 되는 동안 기업과 정부기관은 두려움에 떨었다. 1989년 최초의 세쿠하라 사건이 법정에 회부된 이래 약 1백 건의 성희롱 소송이 제기됐다.

지난해 12월에는 오사카(大阪)
부의 요코야마(橫山)
‘노크’ 前 지사가 성추행 혐의로 약 10만 3천 달러 상당의 배상금 지불 판결을 받고 사임하는 사건이 있었다. 후임으로 지사가 된 오타 후사에(太田房江)
는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지방 정부의 長이 됐다.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법정에서 싸우기를 원한다”고 요코야마의 성추행 사건을 담당했던 쓰노다 유키코(角田由紀子ㆍ57)
검사는 말했다.

1970년대 두 자녀의 엄마였던 그녀는 우유를 타고 기저귀를 빠는 짬짬이 판례를 읽고 법률용어를 암기하면서 독학으로 법률을 공부했다. 그녀는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포기해서 아이들이 자란 후 할 일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라고 계속 채찍질하면서 포기하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요즘 젊은 직장여성들 역시 일에 관한 한 필사적이다. 정부의 한 조사에 따르면 여성들이 계속 일을 하기를 원하면서 여성의 독신기간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길어지고 있다. 독신들은 보통 부모와 함께 산다.

부모에 기생해서 산다는 뜻에서 ‘기생 독신’으로 불리는 그들은 직업과 활발한 사교활동 등 모든 것을 누리면서도 생활비로는 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 엄청난 가처분 소득을 가진 이 여성들은 구치나 프라다 같은 명품을 선호하며 고급 이탈리아 식당과 나이트클럽에서 파티를 즐긴다.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백화점과 남국行 패키지 여행에는 어김없이 기생 독신들이 북적댄다.

도쿄에서 사는 직장여성 혼다 사토코(本田聰子ㆍ31)
는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내가 살고 싶은 아파트를 임대하자면 여행이나 쇼핑에 돈을 쓸 여유가 없을 것이다. 더욱이 부모님도 함께 지내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는 남학생들은 자신들의 꿈과 현실을 조화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어차피 평생직장을 기대하지도 않던 여학생들은 자신들만의 기회를 좇을 준비가 돼 있다.

음악하는 사람들과 일을 하고 싶던 무사시大 2학년생인 사이토 지히로(濟藤千尋ㆍ20)
는 어느날 인터넷에서 한 콘서트 매니저에 대한 웹 사이트를 발견하고 그에게 전자우편을 보냈다. 사이토는 현재 가수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지만 그 일이 졸업 후 본격적으로 일하기 위한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사이토 또래의 여성들은 나이가 들수록 인생이 더 힘겨워짐을 느끼게 된다. 특히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가장 힘든 시기를 겪게 된다. “제도와 법규는 바뀔지 몰라도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바뀌기란 쉽지 않다”고 일하는 여성을 위한 회보지를 만들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우치야마 히로코(內山宏子)
는 말했다.

때로 자녀를 둔 여성들은 가장 전통적인 가치를 신봉하며 일을 추구하는 친구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지난해 아이를 둔 젊은 여성들과 그녀들의 어머니를 대상으로 실시한 유아개발협회의 조사에서 양쪽 모두 94% 이상이 아이들이 삶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60% 이상의 젊은 엄마들은 자녀에게 투자하는 시간이 줄더라도 자신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협회의 마치다 가즈코(町田和子)
사무국장은 “젊은 여성들의 경우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갈등한다”고 분석했다.

일본 여성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모든 것을 다 성취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여대생 사이토는 일을 원한다. 결혼과 육아에 대해서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NTT 도코모社 마쓰나가의 경우에서 보듯 다양한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마쓰나가는 “오늘날 여성들에게 분명히 선택의 폭은 커졌지만 그만큼 도전정신도 성장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피력했다, 신경제의 경쟁에서 일본 여성들은 상당히 유리하다. 일본 여성들은 애초부터 옛 체제의 주인공이 아니었으므로 앞으로 누가 승자가 될 것인지는 자명한 셈이다. [뉴스위크=Kay Itoi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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