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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군자삼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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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맹자(孟子)』는 ‘진심(盡心)’ 장에서 군자삼락(君子三樂), 즉 군자의 세 즐거움에 대해 말했다. ‘부모가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하늘을 우러르고, 사람에 굽어봐도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英才)를 얻어 교육시키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맹자는 이 앞에 ‘천하의 왕 노릇 하는 것은 세 가지 즐거움에 들어 있지 않다’고 전제했다.

 이것이 유가(儒家)의 삼락(三樂)이라면 도가(道家)의 삼락은 영계기(榮啓期)가 정의했다. 『공자 가어(家語)』와 『열자(列子)』 『천서(天瑞)』에 나온다. 공자가 태산(泰山)을 유람할 때 영계기가 사슴 갖옷[鹿皮]에 띠는 새끼줄[索]을 하고 거문고를 타자 공자가 ‘뭐가 그리 즐거운가’라고 물었다. 영계기는 “만물 가운데 가장 귀한 사람이 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남자는 존귀하고 여자는 낮은데 남자가 된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사람이 태어나서 강보(襁褓)를 면치 못하고 죽기도 하는데 아흔 다섯까지 살았으니 세 번째 즐거움”이라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남존여비(男尊女卑)라는 어긋난 인식도 있지만 나름대로 세상을 달관하며 사는 처세술이었다.

 그러나 삼락(三樂)을 누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조선 초기 문신 권오복(權五福)은 “만 가지 일 중에 삼락 외에 구할 것이 없다(萬事不求三樂外)”고 말했지만 연산군 4년(1498)의 무오사화 때 서른한 살의 나이로 사형당했다. 자신이 왕 노릇 하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수양대군이 천하의 왕 노릇 하는 것을 눈 뜨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선조 임금의 손자였던 조선 중기의 이건(李健)은 ‘어머니 생신 때 취해서 짓다(慈親生辰, 醉後作)’라는 시에 “어찌 사람이 세상 살면서 삼락을 다 갖추랴(何人處世俱三樂)”라고 읊었다. 이건의 부친은 선조의 일곱째 아들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이었는데, 인조 6년(1628) 북인 유효립(柳孝立) 등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다는 이유로 진도(珍島)에 안치된 후 자결해야 했다. 이건도 형제들과 제주로 안치됐다가 풀려 나와 이 시를 지은 것이다. 집안이 풍비박산 난 다음에야 군자삼락도 그리 쉽지 않은 복임을 느꼈던 것이다.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천하의 왕 노릇 하려는 욕심 때문에 그런 일을 만든다. 꼭 한번 호되게 당하고 나서야 이건처럼 어머니라도 살아계신 것을 기뻐할까?

이덕일 역사평론가